강경론자들은 통합진보당을 이 의원 등 종북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만큼 통진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신중론자들은 이 의원 등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부 당직자들의 혐의를 당 전체로 확장해 정당 자체의 해산을 논하는 것은 성급한 대응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달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통합진보당은 우리나라 헌법이 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포함되기 힘든 정당"이라며 “하루속히 해산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인제 의원도 “정당의 주요 구성원의 행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더라도 그 정당을 해산할 수 있음은 물론”이라며 “대한민국을 적대하고 뒤집어엎으려는 세력의 근거지인 정당에 더 이상 국민의 혈세가 지원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홍문종 사무총장 역시 “지금 RO 멤버 중에 현역 국회의원들이 두 명 더 있다. 또 보좌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통합진보당은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고 정우택 최고위원도 “내란음모가 사실이라면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해 빨리 해산시킬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정당해산의 역사
정당해산은 과거 독재정권에서 권력유지를 위해 악용돼왔다. 제헌의회가 제정한 제1공화국 헌법에는 정당에 관한 규정이 없는 등 정당의 보호나 규제에 관한 법적 근거가 전혀 없었다. 군소 정당이 난립했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자유당을 창당하고 계엄령을 선포해 반대파 국회의원을 탄압하고 반대 정당을 해산했다.
이어 1961년에는 5·16군사정변으로 정당들이 해체되고 1963년 1월까지 정당 활동이 금지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에도 국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 뒤 유신정권인 제4공화국을 출범시켰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979년 10.26사태로 이듬해 10월 새 헌법이 발효되면서 국회와 정당들이 자동 해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행 헌법상 정당해산 심판․결정권을 갖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1988년 이후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받아들여지거나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진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 정당해산의 법적 근거와 절차
정당해산 제도는 1960년 4.19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 헌법부터 도입됐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인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통해 정당해산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 제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을 제소하려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헌법 제89조 14호. 헌법재판소법 제55조) 즉, 일반 국민은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정부에 청구를 청원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을 결정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헌법 제113조 1항. 헌법재판소법 제23조 2항)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을 명하는 결정을 선고하면 그 정당은 해산되고(헌법재판소법 제59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법에 따라 해산을 집행하게 된다.(헌법재판소법 제60조)
우리 헌법의 가치기준인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게 하면서도 그 해산은 정치적 중립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심판을 통해 결정하게 함으로써 과거 독재정권이 자행한 야당 탄압을 방지하도록 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이번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와는 별개로 이미 지난 4~5월 부정경선과 당 중앙위 폭력사태로 보수단체들에 의해 해산심판 청구가 법무부에 청원된 상태다.
당시는 당내 문제인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검토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당 소속 국회의원과 간부들이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새누리당과 보수단체들의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는 지나치게 성급한 주장이라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의당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지금 시점에서 일부 간부들의 혐의를 정당 전체로 섣불리 확대적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정의당 관계자는 “RO 조직원 몇몇이 표방하고 있는 것들이 통합진보당의 강령도 아닌데 정당해산 문제가 논의의 수면에서 다뤄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정치 전문가들도 ‘법적으로 내란 등 해산 요건을 충족시키는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지면 생각해 볼 문제’라며 ‘정당해산 주장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내란음모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고 통합진보당이 당 차원에서 가담했다는 확신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내란음모 혐의가 수사를 통해 좀더 분명하게 밝혀져야 판단할 수 있을 문제”라며 “이를 통해 정당 당원이나 주요 인사 대부분이 RO조직원이거나 조직을 주도했다는게 확인되면 정당해산 자체를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법 전문가 사이에서는 내란음모 성립이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벌써부터 정당해산을 계속 거론하는 것은 현재 사안을 부풀리거나 키우려고 하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또 “국정원과 검찰 수사 등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헌정 체제를 유지시켜야 하는 공당이 먼저 정당해산 얘기를 들고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는 다른 당원들도 있는데 정당 하나를 통째로 종북세력으로 몰고 가는 것도 공당에 걸맞지 않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석기 의원을 강력 비판하며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해서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적인 방법이 아니라 국민들의 에너지와 공분을 모아내어 통합진보당 스스로 그 압력에 항복해 자진해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