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에 담보로 잡힌 차량, 대포차로 '둔갑'

자동차 사채의 '비밀'…'대포차'로 유통되면 되찾기 불가능

(사진=더 스쿠프 제공)
자동차는 사채시장의 좋은 담보다. 집이나 부동산과 달리 바로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제차를 담보로 잡은 사채꾼은 짭짤한 수익도 손에 넣을 수 있다. 문제는 사채시장에서 담보로 잡힌 자동차가 '대포차'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8월 27일 오후 6시 서울 동작구 대방동 아파트 단지. 평일이라 한적해야 할 지하주차장이 고급 세단으로 빼곡했다. 그랜저, 제네시스, 에쿠스, 체어맨 등 국내 고가 차량과 아우디, BMW, 벤츠 등 외제차도 있다. 중고차 매장을 연상케 했다. 세어보니 모두 15대.

아파트 경비원은 "주민 항의가 많아 그렇게 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쪽에 몰아 주차한 차량들엔 한 사람의 연락처가 적혀 있다. 사채업자 정찬민(37·가명)씨. 정체불명의 차량은 정씨가 임시로 맡고 있는 '볼모'다.

선후배와 함께 움직이는 정씨는 포커·바둑이·섰다판과 사설 경마·경정·경륜 등이 벌어지는 서울 시내의 도박장에서 급전이 필요한 도박꾼들에게 속칭 '꽁지돈'(노름판 사채)을 대출해주고 차량만 전문적으로 담보로 잡는다.

차량별 대출 가능 금액은 대략 그랜저·제네시스급은 500만원, 에쿠스·체어맨급은 700만원, 외제차는 1000만원이다. 정씨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도박장 사정상 그때 그때 흥정에 따라 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랜저를 담보로 정씨에게 1000만원을 빌린다고 가정해 보자. 전제는 근저당권 설정이나 압류 등이 없는 깨끗한 차량이다. 정씨는 수수료 명목으로 10%를 뗀다. 여기에 3개월 치 선이자를 미리 받는다. 채무자가 3개월 내 원금을 상환해도 이 돈은 반환이 안 된다. 한달 이자는 원금의 10%. 결국 채무자에 건네지는 돈은 600만원뿐이다.

'족쇄'도 채워진다. 채무자가 약속 기간 안에 돈을 갚지 못하거나 이자를 체납할 경우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차량포기 각서'를 작성한다. 사채업자가 담보 차량을 몰아도 된다는 내용의 '운행허가 각서'에 사인해야 된다. 정씨는 "차량을 담보로 잡는 것은 집이나 땅과 달리 현장에서 직거래가 가능하고 처분이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더 스쿠프 제공)
문제는 이렇게 담보로 잡힌 차량들이 속칭 '대포차'로 유통된다는 점이다. 정씨 같은 차 전문 사채업자들은 폭력, 협박 등 채무자를 닦달하지 않는다. 원금을 갚지 않거나 이자를 연체할 경우 포기 각서를 내세워 임의로 차량을 처분한다. 멀쩡한 세단이 대포차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사채업자가 연체 차량을 대포차 브로커에 넘기면 무적차가 된다. 차 주인도 더 이상 '애마'를 찾을 수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 때문이다.

대포차는 정상적으로 매매되는 중고차 시세보다 훨씬 싼 금액으로 거래되지만, 사채 원금을 상회해 사채업자로선 절대로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브로커는 대부분 중고차 매매상들로, 이들은 제3자에게 직접거래 방식으로 헐값에 판매한다.

정씨는 "상환 기한은 3개월 내지 6개월로 정하는데 원금이 입금되지 않거나 이자가 두달 이상 연체되면 바로 차량을 처분한다"며 "소유주가 뒤늦게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신고할 경우 역으로 각서를 첨부해 채무사기혐의로 고소한다."라고 밝혔다.

대포차는 명의이전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로 자동차등록원부상 법적 소유주와 실제 운행자가 다른 차량이다. 아예 등록하지 않거나 말소된 차량도 대포차라 한다. 도난·체납 차량도 있지만 사채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전국을 달리는 대포차는 100만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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