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김모(41) 씨는 한쪽 몸이 불편한 3급 장애인이다. 2급 장애를 앓고 있는 부인과 결혼한 뒤 세 아이를 낳았지만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다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퇴직 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최근 수급자 자격에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머니 소유의 팔리지 않는 땅이 문제가 된 것. 실제 어머니는 부채 때문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는 커녕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이다. 김 씨는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어마어마한 자료 요구에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 김 씨는 "지원이 끊기면 당장 네 식구는 굶어야 한다"면서 "이혼해서 부인과 자녀라도 수급자 자격을 유지시키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 서울 성북구에 사는 뇌병변장애 1급 전모(34) 씨도 최근 수급 중지 통보를 받았다. 2011년 7월까지 시설에 거주하다 독립한 전 씨는 어머니의 재산 때문에 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했다가 이의신청을 통해 겨우 자격을 유지한 경험이 있다. 그로부터 2년 뒤 같은 이유로 재탈락 통보를 받은 것이다. 문의를 하러 가자 전 씨는 동사무소 직원으로부터 "정말 부모와 연락을 안하느냐"는 의심을 받고 모욕감을 느꼈다. 시민단체 도움을 받아 어렵게 두 번째 이의신청을 제기한 전씨는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했고, 시설로는 돌아가기 싫다. 지원이 끊기면 나는 죽으라는 얘기"라며 막막함에 눈물을 흘렸다.
감사원이 지난 8월 13일 복지전달체계 운영실태 점검을 통해 수천억 원대 복지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고 발표하자 그 불똥이 빈곤층에게 가장 먼저 튀는 형국이다.
복지 다이어트는 박근혜 대통령도 나서서 강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감사원 발표 직후 "최근에 복지를 위한 증세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저는 먼저 기본부터 바로 잡아서 탈세를 뿌리뽑고 낭비되는 누수액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철저한 복지 누수 단속을 주문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기초생활수급자 심사 및 관리를 담당하는 구청 및 동사무소 직원들은 수급자 자격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조사에 임하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청 기초생활수급 심사 담당자는 "감사원의 발표가 아무래도 현장에 영향이 있지 않겠느냐"면서 "7월부터 부양의무자에 대한 소득 확인조사도 해서 수급 자격을 엄밀히 가려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 1년에 두번씩 확인조사, 할 때마다 수만명 우수수 탈락
'일제조사'로 불리는 기초생활수급자 소득확인 조사는 상하반기로 나눠 1년에 두차례씩 실시된다. 그런데 한 번 할 때마다 평균 4만여명의 자격이 박탈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무더기 탈락 현상은 수치에도 명백히 드러난다.
보건복지부가 제공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으로 154만9820명이었던 수급자수는 2011년 146만9254명, 2012년 139만4042명으로 2년만에 약 15만5천여명이 줄었다.
특히 '사회복지통합전산망'(사통망) 도입 이후에 이같은 무더기 탈락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통망은 보건복지부가 2010년 1월부터 시행한 전산망으로 42개 기관이 보유한 452종의 소득, 재산 자료가 수시로 제공된다. 사통망에서 본인 또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이나 재산이 잡히면 자격이 탈락되거나 지원액이 깎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제도를 완화하는 등 기준을 느슨하게 했는데도 사통망이 도입된 이후 탈락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 기초생활 수급자의 경우 한 번 조사할 때마다 3~4만명씩 탈락한다"고 설명했다.
◈ 부당 탈락에 자살까지…사통망 도입 이후 자격탈락 극심
소득이 있는데도 지원을 받아온 부정 수급자는 가려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불충분한 현장조사로 생계 지원이 부당하게 끊기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락이 닿지 않거나 경제적 지원이 없는 부양의무자의 소득 때문에 하루아침에 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거제에서는 78세 이모 할머니가 사위의 취직으로 기초생활수급권 자격을 박탈당하자 이를 비관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거제 할머니 등 기초생활수급 자격 박탈로 인한 자살자는 파악된 사례만 최근 3년간 6명에 달한다.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초생활수급자격을 박탈당한 19만3591명 중 10.3%인 1만9978명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격을 박탈당했다.
◈ "보편적 복지 치중하느라 빈곤복지 소홀"
이 때문에 대다수 공무원 인력과 최첨단 전산망 시스템이 빈곤층 구제를 위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자격 심사에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사통망 도입 이후에는 빈곤층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도록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수급자 자격을 빼앗을 것인가에 시스템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충분한 현장 조사를 통해 수급자 개개인의 상황을 파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금융 자료로 자격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 하반기 확인조사 결과는 이달 말 최종 집계될 예정인 가운데 역시 수만명의 탈락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무상보육, 무상급식, 고교무상교육 등 무상 시리즈가 확대되면서 보편적 복지에 정부 정책의 방점이 찍히는 사이 가장 기본이 되는 빈곤 복지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비판한다.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을 맡고 있는 김남희 변호사는 "절대 빈곤층의 복지 혜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를 확대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이다"면서 "정부가 복지 재정을 아끼기 위해 빈곤층 복지 다이어트에 나선다면 사회복지의 기본 정신을 망각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