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MLB 레터]"추신수 씨, 해밀턴의 스승이 돼 주세요"

'내년에도 빨간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신시내티 1번 타자 추신수는 올 시즌 뒤 FA 자격을 얻어 내년 거취가 어떻게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7일(한국 시각)부터 시작된 LA 다저스와 홈 3연전 기간 경기 전 훈련을 하는 모습.(신시내티=임종률 기자)
메이저리그 신시내티와 LA 다저스의 3연전이 열리고 있는 미국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 미국 오하이오주 남부에 자리한 신시내티는 인구 30만 명 정도의 비교적 작은 도시입니다.

14년 전 보스니아에서 이곳에 왔다는 블랑코 밀리시치 씨는 "위성 도시 격인 인근 지역 주민들을 합해야 비로소 300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서부지역의 LA를 비롯해 인접한 동부의 시카고나 뉴욕 등 수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와 달리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시내 중심부도 번잡함과는 거리가 멀죠.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다른 어떤 도시들보다 뜨거운 것 같습니다. 이번 3연전 동안 홈 구장은 온통 붉은 물결이 일 만큼 3만 명 이상 관중이 들어찼습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가장 역사가 긴 야구단 레즈가 있어서일까요? 지난 1869년 최초의 프로구단이 창단된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CIN 팬 "추신수, 기복 없이 꾸준히 출루"

신시내티에서 나고 자랐다는 스티브 맥코이 씨도 열혈 레즈팬입니다. "매일같이 신문이나 스마트폰으로 레즈의 기록을 확인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무턱대고 일방적인 응원만 하는 게 아니라 "올해도 지구 1위를 하지 않으면 월드시리즈 우승은 힘들 것"이라면서 "투수진은 좋은데 타선이 약해 어렵다"며 냉철한 전망을 내놓을 때는 야구 전문가가 따로 없습니다.


그런 맥코이 씨의 눈에 레즈의 리드오프 추신수(31)는 어떻게 비쳤을까요? 추신수 얘기가 나오자마자 맥코이 씨는 "엄청난 선수(awesome)"이라며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올해 신시내티의 키플레이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약점이었던 1번 타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다는 겁니다. 맥코이 씨는 "타율은 좀 떨어져도 출루율이 좋아 득점을 많이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추신수는 8일 현재 타율은 2할8푼9리로 내셔널리그(NL) 18위지만 출루율 4할2푼1리와 득점 97개로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NL 2위인 볼넷(95개)과 메이저리그 전체 1위인 몸에 맞는 볼(23개)로 약간 떨어지는 타율을 상쇄하고 있습니다.

맥코이 씨는 "신시내티 팬들 대부분이 추신수의 진가를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외지에서 온 밀리시치 씨 역시 "추신수는 기복이 별로 없고 평균 이상을 꾸준히 해준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떠나지 말고 해밀턴 가르쳐 주세요"

다만 맥코이 씨는 추신수가 레즈를 떠날지 모른다며 걱정입니다. 지난 시즌 뒤 신시내티와 1년 계약을 맺은 추신수는 올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습니다.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 사단인 만큼 부자구단으로 갈 확률이 높습니다.

맥코이 씨도 이 부분을 인정합니다. 그는 "문제는 돈"이라면서 "신시내티 재정 상 추신수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올해 총 연봉 1억 600만 달러(약 1160억 원)로 팀 사상 최고액을 쓴 신시내티로서는 5년 최소 7000만 달러(약 765억 원)가 예상되는 추신수의 몸값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팬 데이비드 씨는 "추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합니다. 어차피 떠날 선수기 때문에 아예 정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추신수, 싫어요' 신시내티의 열혈팬이면서도 올 시즌 뒤 떠날지 모른다며 추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씨(왼쪽).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를 찾은 기념으로 한장 찍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맥코이 씨는 "추신수가 레즈에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비단 현재 팀의 1번 타자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역할에 대한 기대감 때문입니다. 바로 유망주를 위한 훌륭한 스승 역할을 해달라는 겁니다.

특히 신시내티의 차세대 1번 타자 중견수 빌리 해밀턴(23)이 대상입니다. 맥코이 씨는 "추신수는 타격은 물론 수비, 주루, 작전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면서 "반면 해밀턴은 아직 빠르기만 하고 특히 번트가 형편없다"고 비교했습니다.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155도루, 올해 75도루를 올린 해밀턴은 올해 빅리그 승격 뒤 4번 대주자로만 나와 4도루 3득점을 올렸습니다. 마이너리그 통산 타율과 출루율 2할8푼과 3할5푼을 기록했습니다.

맥코이 씨는 "추신수가 레즈에 남아서 해밀턴에게 야구를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다"면서 "해밀턴이 발이 빠른 만큼 중견수를, 추신수는 좌익수를 맡으면 된다"며 나름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추신수의 원래 포지션인 우익수는 프랜차이즈 거포 제이 브루스가 버티고 있어 언급하지 않더군요. 레즈의 현재 주전 좌익수는 지난해 4번을 맡았던 라이언 루드윅입니다.)

▲추 "내년 거취? 지금은 우승만 생각할 때"

하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일단 추신수는 1년 계약을 맺었고, 레즈를 떠날 확률이 적잖다는 게 현지 예상입니다.

한 교민은 "추신수가 온 이후 이곳 한국 분들이 경기장을 종종 나가 응원한다"면서도 "그런데 추신수의 유니폼을 사고 싶어도 없다"고 합니다. 티셔츠는 비교적 제작이 간편해 추신수의 이름이 박힌 게 있지만 경기용 셔츠, 즉 저지(jersey)는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일부 교민들은 "곧 떠나기 때문에 제작하지 않는 게 아니냐"고도 한답니다.

실제로 구단 직영의 야구장 내 상점에도 추신수의 저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곧 떠나기 때문은 아니랍니다.

'유니폼은 없어도' 신시내티 홈 구장 안 상점에 진열돼 있는 추신수의 티셔츠. 특별히 한글로 쓰여진 기념 티셔츠도 있습니다.(신시내티=임종률 기자)
상점 직원은 "판매량 때문에 미리 제작해놓는 선수 유니폼은 간판 스타인 조이 보토가 거의 유일하다"면서 "나머지 선수들의 유니폼은 따로 주문이 들어오면 추가 비용을 들여 제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흑인 및 중남미계 등 소수인종을 위한 기념일에 맞춘 특별 유니폼을 기대했지만 추신수의 저지는 없더군요. 브랜든 필립스 등 일부 선수들의 유니폼만 보였습니다.)

어쨌든 추신수 본인도 가급적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내년 거취에 대해 추신수는 "지금은 FA 등 계약 문제보다 팀 우승을 위해 뛰는 것만 생각해야 할 때"라고 강조합니다.

과연 추신수는 내년에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단에서 빨간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을까요? 레즈의 정상급 1번 타자로, 또 해밀턴의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을까요?

P.S-8일 다저스와 경기에서 추신수는 연장 10회말 끝내기 득점을 올린 해밀턴을 부둥켜 안아올리는 흐뭇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또 경기 후에는 해밀턴의 무한한 가능성과 가치에 대해 찬사를 보냈습니다. 다만 이날 경기 전 해밀턴의 스승 역할을 바라는 팬들의 바람에 대해서는 "내가 누굴 가르칠 수 있겠느냐"며 겸손하게 손사래를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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