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에서 '파도미남(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남자)'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부터 전두환 미납 추징금까지, 험준한 고개들뿐이었다.
'파도 파도 미담'만 나왔던 그는 결국 파란만장한 5개월을 보내고 '혼외 아들설'을 끝으로 검찰총장직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한민국 제39대 채동욱 검찰총장의 이야기다.
지난 4월 차기 검찰총장 내정자였던 채 총장은 독특한 '인사 청문회'로 국민들에게 자신을 알렸다.
드물게 정책검증에 질문이 집중됐던 까닭은 그에게서 재산이나 병역 등 개인비리 의혹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
여야 의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채 총장을 칭찬했고, 검찰 내부에서도 채 총장의 취임으로 변화할 검찰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당시 채 총장은 검찰개혁과 함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관련해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확고함을 보였다. 취임사에서도 연달아 "부정과 비리를 단죄하는데 어떤 성역도,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의지를 강조했다.
자신의 말을 입증하듯 채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관련된 대선 개입 의혹을 담당하는 특별 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는 그에게 있어서 첫 시험대였다. 이명박 정권 시절 '정권의 시녀'라는 별칭까지 달았던 '검찰'의 개혁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수사기간 동안 채 총장은 공개적으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해 외압을 막고 수사팀에게 힘을 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검찰은 수사팀의 의지대로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법상 정치개입 금지와 공직선거법 위반죄를 적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검찰이 생각했던 사전구속영장은 청구할 수 없었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공직선거법 적용에 반대해 불구속 기소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며 "그 검찰이 이명박 정부 사람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해 현 정부와 국정원 대선 개입의 무관성을 은연 중에 못 박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청와대의 선 긋기에도 채 총장은 흔들림 없이 다음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전두환 추징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검찰에 "당초 시효 완성시점이었던 10월을 목표로 반드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채 총장의 뜻대로 검찰은 뚝심있게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몰아쳤다.
미납추징금 환수팀은 지난 7월 전 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을 압류하고 일가 17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뿐만 아니라 전 전 대통령의 친인척 주거지 등 1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추가로 진행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 소유의 사업체들도 수색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같은 압박이 계속되자 결국 전 전 대통령은 10일 장남 전재국씨를 통해 미납추징금 1672억 원을 웃도는 1703억원의 추징금을 자진납부했다.
하지만 결국 앞선 6일 조선일보의 보도로 채 총장의 '혼외 아들설'이 의혹으로 떠오르면서 그의 행보도 위기를 맞았다.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자진납부에 기뻐할 새도 없이 채 총장은 '혼외 아들설'을 해명하고 '유전자 검사'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조선일보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해 의혹을 바로잡으려 노력했지만 유례없는 법무부의 감찰엔 채 총장도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채 총장은 법무부가 감찰에 착수한다는 공식 발표를 한지 1시간 만에 '사퇴'를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취임한 지 꼭 163일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