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끝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민주당 노웅래 대표비서실장의 “쳇바퀴식 대답만 나올 뿐 확실한 대답은 없었다. 국민 모두가 (국정원 선거개입 등 현안에 대해) 알고 있는데 청와대만 모르고 있구나 생각돼 소름끼쳤다”는 배석 소감도 그 가운데 하나다.
▶민주당, 왜 소름끼쳤나?
김한길 대표는 이날 7개 요구안을 가지고 회담에 임했다.
우선 국정원 개혁 3가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요구는 그러나 “지난 정부 때의 사안으로 사과하는 건 무리다”는 박 대통령의 반응에 빛이 바랬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는 “재판이 끝나면 그에 상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답변에 맥없이 무너졌다.
국내파트 폐지 등 국회 주도로 국정원의 개혁에 나서겠다는 김 대표의 다짐은 “국정원이 자체 개혁안을 마련중이기 때문에 이 것을 보고 말해 달라”는 박 대통령의 설득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다음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와 관련된 2가지 이슈.
채동욱 총장을 사찰한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는 김한길 대표의 주문은 “그 것은 정략적 정치선전이다. 본인이 의혹을 소명해야한다”는 대통령의 논리에 막혔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공소유지를 맡고 있는 검사들에 대한 신분을 보장해 달라는 김 대표의 요구는 이런 저런 신경전 사이에 아예 끼어들지도 못했다.
끝으로 민생 현안 2가지.
경제민주화 및 복지후퇴는 안된다는 김 대표의 염려에 대해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줬다는) 부자감세는 사실과 다르고 법인세 인상 역시 세계적 추세와 맞지 않다”며 반박했다.
그나마 7가지 요구가운데 ‘감세정책의 기조를 바꾸라’ 정도만이 박 대통령이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 감세하겠다”고 말해 그나마 일부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각론에서는 이견이 표출돼 민주당이 들고 나온 7개 의제는 어느 것 하나 관철되지 못한 채 끝났다.
김 대표는 이날 회담 직후 민주당 의총에 참석해 “주제마다 평행성을 긋는 이야기였다. 대통령과 담판으로는 민주주의 회복은 무망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소회를 밝혔다.
▶ 민주당의 성적표는?
민주당이 이날 3자 회담에 응한 것은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이 '쿨'하게 3자회담을 하자, 그것도 전례 없이 국회를 찾겠다고 해서 더욱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 같은 기대가 없었다면, 당내 강경파의 요구를 무릅써가면서까지 회담에 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가 처참히 무너졌다는 게 민주당 쪽 반응이다. 한마디로 “농락을 당했다”는 것이다.
굳이 소득을 찾자면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을 일부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한다.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는 “굳이 저희가 얻은 성과라면 박 대통령의 정국 인식을 국민에게 알게 한 게 성과”라고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국정원 정치개입, 채동욱 사건 등을 둘러싼 싸움에 박 대통령을 직접적인 상대자로 링 안으로 불러들였다는 점 역시 민주당의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고 말했다.
▶ 청와대의 손익 계산서는?
이번회담 직후 청와대는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이날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찾아가서 정치권 지도자들과 현안에 대해 온갖 얘기를 나눴다는 자체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존중하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고도 했다.
결국 청와대로서는 회담을 통해 야당과 협조하려 했다는 인상을 풍기면서 야당의 공세로부터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특히 박 대통령이 대야관계에서 다시한번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박 대통령은 김한길 대표의 패를 훤히 들여다보고 게임에 임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양보할 수도 있는 게임에서 굳이 야당을 무력화 시키는 길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이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지지도 조사에서 지지율 70%가까이 얻는 박 대통령이 이번 계기로 자칫 독선에 빠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그 것이다.
▶ 새누리당에게는 어떤 손익이 있나?
여당 역시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운명체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이익이라고 볼 수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도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 대화를 한 마당에 더욱 대야 공세에 고삐를 당길 수 있게 됐다.
유일호 대변인도 이날 회담 직후 민주당을 이렇게 압박했다.
“김한길 대표께서도 민생 안정에는 여야가 없다고 하셨다고 들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해 주시길 바란다.”
하지만 야당과 청와대간 대립관계가 강고해지면서 자칫 여당 존재감이 실종되지 않을지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특히 야당 없이는 국회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쪽은 여당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 정국 전망은?
이날 정치 현안에 대한 야당과 청와대간 뚜렷한 입장 차이를 확인하면서 야당의 장외 정치는 한층 공고해질 공산이 커졌다.
특히 강경파의 입지는 더욱 넓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별 변수가 없는 한 냉전기는 한 동안 계속될 것 같다.
유일한 변수는 여론이다.
특히 여론의 결집효과가 큰 추석 민심이 정치판에 어떻게 작용할지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