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본 한주간]“144”..부실회사의 고백, “급해서 땡겨씁니다”

고금리 CP, 서민에게 썩은 동아줄

송은석기자
[CBS '좋은 아침 김윤주입니다]
■ 방송 : FM 98.1 (06:10~07:00)
■ 진행 : 김윤주 앵커
■ 출연 : 미디어 오늘 이정환 기자

김윤주(앵커)> <좋은 아침 김윤줍니다> 토요일 첫 순서는 <숫자로 본 한 주간>입니다. 미디어 오늘 이정환 기잡니다.

이정환(미디어 오늘 기자)> 안녕하세요?

김> 이번 주의 숫자는 뭔가요?

이> 144조 원입니다. 9월 말 기준으로 발행된 기업어음, CP(Commercial paper)라고 하죠. CP 발행잔액이 144조억원이 좀 넘습니다. 최근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잇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CP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는데요. 주식회사 동양이 지난 7월, CP 1569억 원 어치를 발행하면서 동양시멘트 지분을 담보로 잡았습니다. 정확하게는 ABSTB, 자산담보부 전자단기사채라고 부릅니다. 전단채라고도 하고요. 계열사인 동양증권에서 이 CP를 고객들에게 팔면서 동양시멘트는 매우 건실하다고 떠들어댔죠. 그런데 동양시멘트까지 날아가게 될 판입니다. 결국 피해는 고객들이 떠안게 됐는데요. 안전한 데다 이자도 높다고 하니까 샀다가 원금까지 날리게 됐습니다.

동양 CP 금리 년 7~8%25..
부실 경영을 아는 은행이 자금을 빌려주지 않자
고금리로 서민들의 지갑을 겨냥하는 ‘던지기’방식

김>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투자 상품인데, CP를 왜 사는 건가요.

이> 이자가 높기 때문인데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기대 수익률이 높으면 그만큼 위험도 크다는 투자 원칙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동양이 발행한 CP 금리는 년 7~8% 수준이었습니다. 요즘 정기예금 금리가 평균 연 2.75% 정도 되니까 거의 3배를 주겠다고 한 셈인데요. 이렇게 높은 금리를 주겠다고 하면 왜 이렇게 많이 주는 걸까 하고 돌아봐야겠죠. 이런 기업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높은 금리의 CP를 발행합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부도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김> 불완전 판매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던데요.

이> 투자의 최종 책임은 결국 고객의 몫입니다. 적어도 투자상품을 판매할 때는 잘 모르는 고객들에게 수익률을 과장하거나 위험을 축소 또는 은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번 동양그룹 CP 같은 경우는 법정관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계열사인 동양증권 창구에서 계열사 CP를 팔아왔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 ‘아저씨’에 보면 “니 나한테 던지기 하는기가?”라는 말이 나오죠. 동양그룹의 최대주주들이 고객들에게 던지기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던져주는 걸 뭣 모르고 받으면 망하는 거죠. 거래가 잘 이뤄질 때는 매력적인 상품으로 보이는데 실상이 까발려지고 나면 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이번에 동양그룹 사태는 과거 LIG건설 때보다 훨씬 더 죄질이 나쁘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김> 이렇게 망할 줄 알았더라면 당연히 투자를 하지 않았겠죠. 결국 정보의 불평등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되나요? 아니면 CP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일까요.

이> CP하고 회사채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CP는 이사회 결의도 필요 없고 대표이사 직권으로 발행할 수 있습니다. CP가 개인 투자자들이 대상으로 판매된다면 회사채는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팔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고 적정 수준에서 금리가 책정되지 않으면 팔리지 않습니다. 금리는 낮지만 그만큼 리스크를 고려한 투자가 가능하다는 거죠. CP는 그냥 금리 많이 줄 테니까 사라, 이런 식입니다. 우량 기업이 CP를 발행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보통 은행 대출을 받을 형편이 안 되고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어려운 낮은 신용등급의 기업들이 CP를 발행합니다. 고금리 사채에 손을 댄 사람들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CP에 손을 대는 기업들은 이미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돈이 없는 데다 빌릴 데도 없는 그런 기업들이 CP를 발행한다는 거죠. 금리가 높을수록 더 위험한 기업일 가능성이 큽니다.


“고객님, 이런 상품이 있는데요”
창구직원의 솔깃한 제안, 사실은 법정관리 직전에 남발되는 고금리CP상품인 경우가 많은데.

김> 회사채 시장에서 동양그룹 신용등급이 어느 정도였나요.

이> 회사채는 보통 AA 이상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데요.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동양은 B- 등급이다가 D로 하향 조정됐습니다. 동양레저나 동양인터내셔널 등도 C 등급에서 D 등급으로 하향 조정됐고요. 회사채를 발행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발행해도 살 사람이 없었겠죠. 그런데 CP라고 하면 좀 그럴 듯 해 보입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매력적인 투자 상품이라고도 포장도 하고요. 창구 직원이 고객님, 이런 게 있는데요. 하면서 추천을 하면 솔깃하게 되겠죠.

김> CP 사고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지난해 웅진그룹 사태도 있었잖아요.

이> 2011년 LIG건설도 부도 직전에 CP를 남발했습니다.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CP는 휴지조각이 됐고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최근 사례로는 웅진그룹의 지주회사 웅진 홀딩스도 법정관리 직전에 CP를 무더기로 뿌렸죠.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사기 혐의로 구속돼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회사 경영 상황이 나빠질 걸 알면서도 CP를 발행해서 돌려막기를 했습니다. 고객들 돈을 눈먼 돈으로 생각했던 거죠. 회사채가 안 되면 CP라도 하자, 이자만 높게 주면 개인 투자자들은 산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김> 이래저래 CP는 정말 고금리 사채하고 비슷하네요.

이> 워낙 이자가 높으니까요. 가뜩이나 어려워서 CP를 발행했는데 이걸 갚을 방법이 없는 거죠. 그래서 CP를 CP로 돌려막기도 하고 CP가 계속 늘어나는데, 이것도 다 빚이니까요. 그런데 투자자들은 그 규모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설마 망하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걸 텐데요. 실제로 망하는 기업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니까 ‘CP의 저주다’ 그런 이야기도 하고요. 기업을 망가뜨리는 급전 조달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 번 손을 대면 계속 더 안 좋은 조건으로 돈을 끌어다 쓰게 되고 결국 채무불이행 사태로 가게 되는 것이죠.

김> 사기성 기업어음이다,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더라고요.

이>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게 지난 1일이었죠. 그런데 지난달 추석 연휴 전날까지 창구에서 동양시멘트를 담보로 잡은 CP를 팔았다는 피해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경영진들은 동양시멘트까지 넘어갈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죠. 망할 것 같으니까 더 급전이 필요했겠지만 그렇게 급전을 끌어들여도 살아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진짜 사기가 됩니다.

회장님들이 워크아웃보다 법정관리 좋아하는 이유

김> 동양시멘트는 비교적 재무구조가 탄탄하다고 하던데요.

이> 흔히 시멘트 회사를 땅 파서 장사한다고 하죠. 시멘트 회사들이 대부분 알짜배기입니다. 동양시멘트도 올해 상반기 매출이 3117억 원, 영업이익이 115억 원으로 안정적인 편입니다. 그런데 동양시멘트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동양시멘트 지분을 담보로 잡았다고 하니까 그걸 믿고 CP를 산 투자자들도 있을 텐데요. 동양시멘트까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지분을 팔 수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현재현 회장 등이 지분을 지키려고 의도적으로 법정관리 신청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옵니다.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부채부담을 덜려는 꼼수라는 지적입니다. 워크아웃이면 경영진이 바뀌는데 법정관리면 경영진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김> 동양증권에서 동양그룹 CP를 판다는 건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요. 다른 증권사들에게 취급을 안 하니까 계열사 증권사에서 팔도록 한 걸까요.

이> 지난 4년 동안 동양그룹 계열사들 발행한 회사채나 CP의 67.3%가 동양증권에서 팔렸고 소화했으며, 이 가운데 90% 정도가 개인투자자에게 팔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얼마 전에 동양증권 직원이 자살한 사건도 있었죠. “고객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는데요. 그만큼 현장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위에서 압박이 내려오니까 팔긴 했는데 위험한 상태라는 걸 파는 직원들도 알고 있었을 거라는 겁니다. 동양증권 직원들이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경영진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거죠.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증권사가 투자부적격 계열사의 CP를 팔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의 금융감독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아직 통과가 안 된 상태입니다. 금산분리라는 말 많이 하는데, 은행도 문제지만 증권사도 이렇게 잘못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처럼 이제라도 CP 발행을 좀 더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피해자들 보상은 어떻게 될까요.

이> 만약 “원금 손실 위험이 전혀 없다”거나 “다른 계열사나 오리온그룹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도가 날 가능성은 없다”는 등의 말을 창구 직원이 했다면 명백한 불완전 판매가 됩니다. 소송을 내면 피해 금액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겠지만 투자자 본인의 책임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이제 와서 “안전하다고 해서 진짜 그런 줄 알았다”고 해서 손해배상을 받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도 본인 책임을 강조하는 추세입니다. LIG건설의 경우 증권사에 “투자 원금의 30%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적이 있는데 대법원까지 가서 인정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CP시장의 1.3%25수준인 주식시장. 심각해지는 기업양극화에 위험한 CP의 유혹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김> CP 사태가 해마다 터지는데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없을까요.

이>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려면 은행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CP를 발행하게 되는데 금리가 높을수록 위험하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식을 추가 발행하는 것입니다. 증자를 해서 자금을 조달하면 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통틀어 유상증자는 1조 8973억 원.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으로 빠져나간 돈은 13조 6000억 원이나 됩니다.) CP 시장이 144조 원인 것과 비교하면 1.3% 수준이죠. 회사채 시장이 128조 원이고요. 주식시장이 자금 조달 창구가 아니라 자금 유출 창구가 된지 오래 됐는데요. 증자를 하면 기존 주주들 주식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에 회사채나 CP 등에 눈을 돌리는 건데 오히려 조달 비용이 높을수록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죠. 잘 나가는 기업들은 현금이 남아도는 데 투자할 데가 없어서 문제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자금 조달이 안 돼서 이처럼 높은 금리의 CP에 손을 대고, 기업들도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김> 숫자로 본 한 주간, 이번 주의 숫자는 144조 원, 느슨한 규제 공백을 틈타 개인 투자자들 울리는 CP 발행 실태와 투자 유의점까지 살펴봤습니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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