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교보생명 '직접고용의무 위반' 논란

수년간 '위장도급' 시켜온 운전기사들에 '계약만료' 일방 통보

(교보생명 홈페이지 갈무리)
교보생명이 길게는 10년 넘게 일해온 운전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파견계약 만료를 통보하면서 '직접고용의무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교보생명 임직원 수행 운전기사로 일해온 K(46) 씨는 지난 8월 26일 느닷없이 소속 용역회사로부터 통보문을 받았다.

'근로계약의 만료(통보)'라고 커다랗게 적혀 있는 통보문에는 "2013년 9월 30일자로 교보생명과의 근로계약이 만료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2년 전인 2011년 10월 1일, 교보생명의 설득에 파견근로 계약서를 썼던 일이 결국 이렇게 돌아왔다는 생각에 K 씨는 아연실색했다.

K 씨뿐 아니라 교보생명 운전기사로 5년 이상 일한 동료 가운데 7명이 계약 만료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K 씨 등은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11년 파견근로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부터도 '도급 계약서'를 쓰면서 오랜 기간 일해왔기 때문이다.

K 씨 등 교보생명 운전기사들은 "수년 동안 '위장도급'으로 써 놓고, 뒤늦게서야 체결한 파견계약서를 들이밀며 나가라고 할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 "불법을 합법으로 덮는 꼼수 아니냐" 비판

K 씨 등 기사들은 그동안 소속 용역업체를 통해 1년마다 교보생명과 도급계약을 맺어왔다.

그런데 지난 2011년 재계약하는 날, 교보생명 측이 갑자기 그동안 써왔던 도급계약서를 '파견계약서'로 바꾸겠다고 알려왔다.

파견법상 근로자 파견 기간은 총 2년을 넘지 못한다. 만약 2년이 경과하면 사용자인 회사는 근로자를 정식으로 고용해야 한다.

"파견 근로기간 2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느냐"는 기사들의 질문에, 교보생명 경영진은 "파견 계약으로 바꾼다고 해서 오랜 기간 근무해온 기사들을 내보낼 일은 없다"며 안심시켰다.

심지어 계약서도 제목에 '파견' 두 글자만 더해졌을 뿐 종전과 형식과 내용이 모두 동일했다.

그렇게 의심 없이 파견계약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뒤 K 씨 등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런 사전 설명도 없는 계약 만료 통보문 한 장이었다.

K 씨 등은 "당시 교보생명 측이 '이전까지의 계약이 위장도급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자행해온 위장도급이 문제될 것을 우려, 2011년이 돼서야 파견계약으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 전문가들 "교보생명 책임 회피 어려워"

기업들이 근로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위장도급을 자행하는 사례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특히 기업체 수행 운전기사들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위장도급은 더욱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게 현실이다.

K 씨 등은 파견계약서를 쓰기 전부터도 "수행하는 해당 임직원으로부터 출근 시간과 동선 같은 모든 업무 지시를 직접 받는 등 사실상 파견 근로자로 일했다"고 털어놨다.

소속된 용역업체로부터는 출퇴근을 하거나 업무 관련 관리감독조차 받은 적이 없다는 것.

게다가 K 씨 등이 위장도급 형태로 일한 기간은 최장 8년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미 파견법에 규정된 최대 근로자 파견기간 2년을 초과해 근무해왔다는 계산이 나오는 셈이다.

실제로 교보생명에서 8년여 운전 업무를 담당한 L(45) 씨는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노동청에 갔다가 "근무 기간이 8년이나 되는데, 무슨 계약 기간 만료라는 얘기냐"는 노동청 직원의 힐난을 들어야 했다.

이에 따라 K 씨 등은 고용노동청에 "최초입사일부터 파견근로 계약서를 작성한 2011년 이전까지의 근로 역시 도급을 위장한 사실상의 파견 근로"라며 진정을 제기했다.

파견계약서와 무관하게 각 진정인의 최초입사일로부터 2년이 되는 시점부터 교보생명에 '직접 고용 의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H노무법인 소속 한 노무사는 "교보생명 운전기사들의 업무 내용을 살펴보면 2011년 이전이나 이후나 다를 바 없이 파견 근로 성격을 띤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보생명은 뒤늦게 쓴 파견계약서와 상관없이 지금이라도 2년 이상 근무한 진정인들을 직접 고용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령 직접 고용 의무에 해당되지 않는다 해도, 교보생명이 법망의 허점을 노려 오랜 기간 함께 해온 운전기사들을 외면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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