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고국 무관심에 두 번 웁니다
②한국어, 그들에겐 '자신감'
③중1에 '가갸거겨' 배우는 까닭
④민족학급 '핏줄의 마지노선'
⑤이대로 가면 '일본만 있다'
“이놈 흥부야 썩 꺼져!” “아이고 형님 이 겨울에 어디로 가란 말씀이세요!”
지난달 25일, 일본 교토(京都)부 히가시야마(東山)구의 한적한 숲 사이에 있는 한인학교인 교토국제학원은 뜨거웠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문화제 준비에 온 학생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특히 체육관에 있는 한 무리의 학생들은 한국어 대본으로 된 연극 ‘흥부와 놀부’ 최종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무대의상인 저고리를 입고 달달 외운 대사로 지도 교사의 연기 지도에 맞춰 동선과 연기, 발성을 최종 점검했다.
다소 한국어 발음이 부정확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연극 연습 전에도 20여 명의 아이들이 같은 장소에서 장장 10여 분이 넘어가는 사물놀이를 진지한 표정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한 여고생은 웬만한 대한민국 학생이라도 다루지 못하는 태평소를 구성지게 불며 무대를 감동적으로 마무리했다.
◈ 중학교부터 한국어 배우는 아이들 위해 ‘소규모 맞춤 교육’
교토국제학원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인 1947년 개교해 지금까지 2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앞서 방문했던 오사카 건국학원과 다른 건 중학교와 고등학교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학생도 있어 6년 동안 집중·개인 맞춤형 한국어 교육을 펼치고 있다.
이 학교 하동길(63) 교장은 “중1 때 가갸거겨도 모르는 아이들을 한 주 3.5시간 수업과 한국어 동아리 활동으로 집중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전원은 중1을 마치고 1년 간 배운 한국어을 고국에서 직접 쓰기 위해 2박 3일간 어학연수를 떠난다.
또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만 쓰는 훈련을 하고 수학여행도 한국으로 간다.
하 교장은 “내년부터는 2주 동안 한 주는 어학연수, 나머지 한 주는 전국을 한 바퀴 돌며 실제 한국에서 사용하는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중학교 학생 37명, 고등학생 93명으로 소규모 학교다.
한 반에 20명 수준으로, 다른 일본 공립학교 평균 35명에 비해서도 적기 때문에 교사들의 맞춤 수업이 가능하다.
중학교 3학년 최영앙 군은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어를 시작해 처음에는 대화가 안 돼 슬픈 심정이었다”면서 “지금은 고급반에 속해 선생님과 1:1로 공부하고 있다”고 조금은 어눌하지만 자랑스럽게 말했다.
교토국제학원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는 한국어능력(TOPIK) 1~2급을 따 회화가 가능할 정도를 목표로 한다. 고3 때는 한국 대학에 유학할 수준인 5급까지 딸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하 교장은 “단기 목적은 한국 대학에 유학을 보내는 것”이라면서 “일본 대학에 가는 것보다 한국 대학에 가겠다는 아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 “민족학교는 ‘재일동포인’을 육성하는 곳”
주목할 건 민족학교가 한국인을 육성하는 곳이 아닌, 재일동포인을 육성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하 교장은 “한국인을 육성하는 것도 그렇다고 일본인을 육성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면서 “재일동포인으로서 일본인과 한국인 중간에서 가교가 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쓰는 ‘바이링구얼’(bilingual)로 젊은 세대 동포의 주역이 되는 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 교장은 본인부터가 아버지는 2세, 어머니는 3세인 재일동포 2.5세다.
일본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에 유학한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재일동포문제연구소 등 재일동포 복지를 위해 활동하다 6년 전 교장에 취임했다.
하 교장은 “졸업생 가운데 한국에 유학 간 학생이 ‘내가 쓰는 한국말이 일본어 티가 난다’며 하소연한 적이 있다”면서 “95%를 구사할 수 있는데 5%를 못한다는 건 언어의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재일동포는 일본사람이 보면 한국사람 같고 한국사람이 보면 일본사람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있다”면서 “이런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