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창조금융 홍보하더니"…中企 '분통'

의료장비를 만드는 중소기업 사장 김모(59)씨는 올해 여름 1억원의 마케팅자금이 필요했다.

4천만원은 자체 조달했지만 6천만원이 부족했고, 고민 끝에 은행 대출을 받기로 했다. 김씨는 한국무역협회에서 받은 추천서와 각종 특허 수상이력 등을 모아 은행을 찾아갔지만 '퇴짜'를 맞았다.

은행에서는 수출 실적이 없으면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 사장은 "새 정부 들어 은행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열심히 홍보하지만, 주무 책임자들은 대출을 해줬다가 자기들한테 피해가 갈까봐 몸을 사리기에 바쁜 것이 현실"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은행들이 앞다퉈 내놓은 '창조금융' 관련 사업과 중소기업 지원 상품의 실적은 대대적인 홍보가 민망한 수준이다.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 은행 대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기본적으로 은행이 '갑', 중소기업이 '을'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의 특성상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 은행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아쉬울 것이 없는 은행들은 손사래를 친다는 것이다.

은행은 대출을 해줄 때 상환 능력을 가장 중시하지만 중소기업은 충분한 상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의 가치를 평가해 대출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행이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보고 상환능력을 긍정적으로 판단해 대출해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박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중 삼성이나 애플 정도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곳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그런 기술에 등급을 매겨본들 은행이 안심하고 대출해줄 만한 기업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은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들의 신용 분석력이 떨어진다"며 "심사 능력이 높지 않아 위험하다 싶으면 대출을 아예 안 해준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에 대한 중소기업의 불만은 설문조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868개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자금조달 상황을 조사한 결과, 기업의 20.0%가 자금 사정이 어려운 원인으로 '금융권 대출 곤란'을 꼽았다.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에 대해서는 '곤란하다'는 응답이 32.6%로 '원활하다'는 업체(18.3%)보다 14.3% 포인트 많았다.

금융기관 거래 시 애로 사항으로는 '부동산 담보 요구'가 43.1%로 가장 많았고 '보증서 요구'(37.2%), '재무제표 위주 대출'(29.6%), '고금리'(26.3%), '신규대출 기피'(15.8%)가 뒤를 이었다.

조사대상 중소기업의 77.5%는 대출 확대, 수수료 인하 등 은행권의 중소기업 지원 강화 노력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정부 눈치를 보느라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성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기술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되고 기술이 얼마나 시장성을 갖고 있느냐를 평가해야 할 것"이라며 "시장성이 있으면 장래에 현금 수입이 들어오니 은행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중소기업이 돈을 빌리려고 할 때 은행이 건물, 토지 등의 담보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중소기업에 신용대출을 많이 한 은행에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정근 교수는 "대출을 해준 기업에 대한 '사전 심사, 사후 모니터링' 기능만 제대로 작동하면 담보가 없어도 해당 산업, 업종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고 은행이 대출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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