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관상'은 순수익 절반 나눠야 할 얼굴"

[노컷이 만난 사람] 900만 흥행대박 나눔 실천한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9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관상'을 제작한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가 16일 서울 누하동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이명진 기자 mjlee@nocutnews.co.kr
영화 '관상'을 제작한 주피터필름의 주필호(48) 대표는 기부보다는 '나눔'이란 단어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영화 제작 단계였던 지난해 12월 그는 아름다운재단에 관상으로 벌어들인 순수익의 5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영화의 흥행은 며느리도 모른다는데 주 대표는 이례적으로 제작 단계에 나눔을 결정했다.

900만 관객을 돌파한 관상은 주피터필름에서 내놓은 두번째 영화다. 2008년 창립작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 준비하던 몇몇 작품이 엎어졌고 5년 만에 나온 게 관상이다. 비록 관상이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뜨렸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관상과 함께 궁합, 명당까지 '역학 3부작'을 준비하면서 풍수지리에 눈떠 지난해 종로구 누하동 서촌마을로 옮긴 영화사 사무실도 소박한 모습이었다.

나눔을 실천하게 된 특별한 계기를 예상했으나 주 대표는 "자아실현 차원"이라고 간명하게 답했다. 밝고 유쾌하면서도 영화인 특유의 반골기질도 지닌 그는 "평생 업으로 생각하는 영화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보자. 나 혼자보다 여러 사람이 행복해지면 좋으니까"라고 말했다.

"더불어 살려면 욕심을 절반 정도 내려놓아야 하지 않나. 그래야 더 좋은 영화도 만들지 않겠나. 산을 좋아하는데 적당히 배고플 때가 가장 기분이 좋고 정신도 맑다. 어떻게 보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다."

전남 고흥에서 나고 자란 주 대표는 광주에서 10대 시절을 보냈으며 1985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1994년 영화홍보마케팅사 영화방을 차려 '비천무'(2000) '친구'(2001) '엽기적인 그녀'(2001) 등을 작업했다. 주피터필름은 2000년 설립해 한동안 영화방과 함께 운영했다.


- '관상' 포스터를 장식한 배우들처럼 수염을 멋지게 길렀다.

"20대에 영화판에 들어와 수염을 한 30년 길렀다. 당시 투자배급사에 계신 분이 다 나이든 어르신이라 어려보이지 않으려고 부질없는 설정을 하게 됐다.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부추김에 지금껏 유지해오고 있다."

-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는데 원래 꿈은 뭐였나?

"원래는 연기전공으로 입학했는데 너무 잘생긴 애들이 많아서 때려치웠다. 무대는 초등학생 때부터 올랐다. 전남시립극단에서 연기를 배우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목소리가 크고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덕분에 책읽기를 도맡아했고, 행사에도 차출되고 군대에서는 사회를 봤다. 별명이 '까불이'었다. 노래와 춤도 잘 췄다. 고등학교 때 봉산탈춤을 마스터했다. "

- 20대에 홍보사를 차렸으니 일찍 창업한 셈이다.

"연출로 전공을 바꾼 뒤 연출부 생활도 한 3~4년 해봤는데 1년 연봉이 100만 원도 안되니까. 돈 벌면서 영화할 방법을 강구하다 홍보사를 차렸다. 남의 영화만 하다가 진정한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제작을 하게 됐다. 약 12년간 한 홍보마케팅 일이 큰 자양분이 됐다. 성공한 영화보다 망한 영화가 더 많았는데, 어떻게 하면 안 망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 '관상'의 흥행을 예상했나?

"촬영 전에 500만 명은 되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일단 소재가 좋고 이야기의 힘이 있으며, 멀티 톱 캐스팅이 확정되면서 경쟁력이 있겠다고 예상했다. 목표는 700만 명이었다. 그래서 200만 명은 덤이라고 본다. 관객들에게 감사드리며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전환점으로 삼으려고 한다."

- 순수익의 50%25를 기부한다고 약속했는데, 그럼 얼마 정도 되나?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나눔을 실천한 행위가 중요하고, 평생에 걸쳐서 할 예정이라 그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재단에서는 제가 역대 최고의 기부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더라.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간접적으로 기부에 동참하게 됐다."

- 기부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흥행하면 여러 사람들과 관객들에게 돌려주자, 그럼 서로 행복해지는 일이 아닌가. '아내가 결혼했다' 제작 당시에도 나눔을 생각했다. 제가 영화방을 운영할 때라 다른 영화인보다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았다. 제작자 데뷔 기념으로 순수익의 100%를 기부하려고 했다는데 그때는 많이 못 벌어서 못했다."

- '내 심장을 쏴라'가 차기작인데, 이 작품도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나?

"앞으로 모든 제작영화에 대해 순수익의 50%를 나눌 생각이다. 영화는 제 평생 업으로 영화를 통해 돈 버는 것도 좋으나 그게 주목적은 아니다. 그래서 욕심을 절반 정도는 내려놔야 하지 않나. 그래야 더 좋은 소재를 찾고 좋은 영화를 만들지 않겠냐. 배고파서 포식하면 10분 후면 기분이 나빠진다. 특히 문화예술인은 적당히 배고파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적당히 배고프고 싶다."

- 고 최인호 작가의 소설 '겨울나그네'를 영화로 만들 계획이다.

"시나리오가 잘 안풀려서 작가 생전에 영화로 못 만들어 죄송했다. 이번에 선생님 영정 앞에서 죄송하다, 멋지게 만들기 위한 시간이 걸리고 있는데 양해해 달라,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밖에 아내가 결혼했다와 관상의 드라마를 추진 중이다."

- 사업의 다각화인가?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영화가 끝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여자주인공인 주인아가 남편에게 또 결혼하겠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정부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 대사에 확 꽂혀서 제작을 결심했는데 영화에 그 대사가 빠졌더라. 관상도 관상 얘기가 너무 빠져서 실제로 유명한 관상가였던 한명회와 내경, 계유정난을 주인공으로 한 24부작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

- 요즘 한국영화가 잘되고 있으나 제작자의 위상은 추락하고 있는데 영화판의 개선점을 꼽는다면?

"제작자는 갑을병정 중에서 정이다. 우리끼리는 제작자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한다. 속이 하도 새까맣게 타서.(웃음) 올해 '더 테러 라이브' '숨바꼭질'등 신인감독과 베테랑 제작자가 합작한 영화가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점점 스타감독을 선호하는 추세나 한국영화가 새로워지려면 재능 있는 신인감독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또 각 분야에 걸쳐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지고 정착되길 바란다. 그리고 영화는 집단창작예술이다. 거대자본이 투입된 상업영화는 우리 모두의 영화라는 인식이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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