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마을 운동? 느낌 안다고 무작정?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이 제2의 새마을운동을 이야기했다. 박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은 우리 현대사를 바꿔놓은 정신혁명이었다”며 지난 20일 ‘전국 새마을 지도자 회의’에서 제2의 새마을 운동을 제안했다는 소식이다. 제2의 새마을 운동이 어떤 내용을 담을지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실제로 추진된다면 박 대통령이 “국민 통합”, “국제협력”이라고 밝힌 것을 볼 때 지역개발이나 생활개선 쪽이 아닌 특정의 이념과 철학을 내세운 운동일 듯싶다.

그런데 ‘제2의 새마을운동’은 이미 15년 전에 주창된 바가 있다. 1998년 12월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제2의 새마을운동’을 제창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운동’을 구호로 내걸고 나라 살리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건설, 지속가능한 환경 실현, 민족통일 준비, 공생공영의 세계화운동이라는 큰 목표가 제시됐다. 이를 생활현장에서 구체화하고자 생활·의식 개혁운동, 민간 사회안전망운동, 환경보전운동, 지역 활성화 운동, 통일 및 국제화 운동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었다.

이런 운동을 단독적으로 실천해 낼 수 있는 조직이 가능할까? 거의 정부조직에 근접한 형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각 분야별로 정부 정책과 시민운동이 시행되고 있어 중복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결국 제2의 새마을운동은 국민정신계몽이라는 다소 관념적인 운동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고 본다.

◈ 누구의 새마을운동인가?

유신시대에서 5공 정권 시대로 이어진 과거 새마을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사회의 개발을 국가가 주도하는 발전 전략에 맞추고, 국가가 주창하는 이념을 국민 속에 심는 것이었다. 이것이 불편하고 부담스런 이유는 국가주도의 이념과 전략이란 흔히 집권세력의 정략에 따라 편향되고 획일적인 모습을 띠기 때문이다. 국민의 자발적이고 자주적인 개혁 열망과 자생적인 운동을 국가가 흡수해 디자인하고 동원·관리할 위험이 큰 것이다. 이것은 새마을 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1930년대로 접어들며 세계경제의 공황으로 지구촌은 멘붕 상태로 접어들어 전쟁의 위기감이 짙어갔다. 그 와중에 일본은 한반도를 계속 수탈해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제국건설을 준비해야 했다. 결국 우리 농촌은 몰락의 길을 걸었고, 농민들은 체제비판과 저항의지가 강해져 갔다.

민족진영에서는 민족의 자주적 의식과 힘을 키우기 위한 농촌계몽운동이 시작됐고, 조선총독부는 이에 맞서 관주도형 농촌운동을 전개했으니 바로 ‘농촌진흥운동’이다. 그러면서 총독부의 농촌진흥운동과 충돌하는 우리 민족의 민족계몽운동은 강제 중단시켰다.


이승만 정부 때도 일부 농촌 마을에서 자발적인 농촌개혁이나 생활개선운동을 벌이며 농촌계몽운동의 전통을 이어갔다. 그러다 1955년 이후 ‘지역사회개발사업’이 시작된다. 미국과 유엔이 개발도상국에게 스스로 근대화를 위해 노력하면 만큼 지원한다는 매칭펀드 방식의 후진국 지원 사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엔은 후진국 지원 예산을 절약하고자 한 사업이다. 그러나 지역사회개발사업은 이승만 정권의 부패로 지지부진하다가 1962년 농촌진흥청 사업으로 흡수돼 버린다.

4.19 이후 장면 정부는 경제발전 5개년 계획과 국토개발기획단 사업을 추진했다. 의식개혁과 생활개선, 지역개발 사업을 민관협동으로 추진하려한 것. 이 사업은 5.16 쿠데타로 중단되고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국토개발기획단 사업은 재건국민운동이라는 관제운동으로 바뀐다. 이 재건국민운동이 유신시대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진다.

박정희 정부는 쿠데타 이후 정권의 정통성 강화와 도시화·공업화에 몰두하다보니 농촌을 방치 내지는 차별했다. 그러자 1970년대에는 방치되었던 농촌개발과 식량문제를 풀지 않으면 농촌의 큰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 때문에 도시·농촌의 격차를 줄이고, 지역균형발전도 여기에 접목 시키려 한 것이 새마을운동이다. 그리고 10월 유신이라는 장기집권을 노린 정치변혁의 시점에서 새로운 국민의식운동까지 얹어 지지기반을 굳히려 했다.

여기에 1960년대 일본의 협동조합운동이나 농촌개혁, 대만의 농촌사구(우리나라의 里나 面)발전운동, 이스라엘의 키브츠 운동, 덴마크의 삼애운동(하늘, 사람, 땅) 등 다른 나라의 개혁운동에서 영감을 얻고 이를 벤치마킹 하려던 여러 민간 선도자들이 아이디어와 열정을 보태었다. 결국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조직되기 이전부터 자조협동의 새마을이 있었고, 농촌살리기를 고민한 새마을지도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신정권의 새마을운동에 편입되어 묶이면서 우리가 기억하는 국가 올인의 새마을운동이 된 것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 느낌 안다고 밀고 나가나?

이것이 우리 새마을 운동의 역사이자 새마을운동의 역사성이라 할 수 있다. 집권 통치자가 창안하고 온 국민이 감동해 따름으로써 국민정신 개조가 가능했다는 것은 오해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대통령의 신화가 아니라 우리민족 근대화 과정에서 굴절을 겪으며 익어가다 탄생한 관주도의 국민운동이었다.

결국 유신시대에 등장한 새마을운동은 관주도의 개혁운동이라는 점에서 조선총독부 농촌진흥운동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경제 위기와 농촌의 몰락이라는 상황에서 정치적 책임과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정신계몽운동을 카드로 꺼내들고 민중의 저항을 피해 나간 것도 유사하다. 사실은 경제 정책의 불공정과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이 더 큰 원인임을 교묘히 감춘 것이다.

관주도의 정신계몽 운동이란 언제나 국가주의와 연결되어 있고, 국가주의란 집권세력의 이념을 주입시키는 통로로 사용될 수 있다.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이나 용산개발의 경우가 지역개발이 국가적 개발이데올로기에 휘말려 희생된 예이다. 문제는 사업뿐만 아니고 마을 공동체가 자발적인 삶의 공동체가 아닌 국가 지배의 단위조직으로 바뀔 수 있고 정치적 색깔을 짙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목도한 그대로이다.

살펴본대로 국가 지원의 전국적 새마을운동은 근대화 과정에서는 적용시킬 수 있어도 현대사회에서는 어렵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디지털 시대의 미래창조경제는 창의성과 자발성이 성공의 요건이다. 여기에 새마을 이념의 획일적 적용은 부조화스러울 뿐이다. 느낌 안다고 밀고 나갈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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