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정원은 이 같은 소극적인 의사표시에서 벗어나 개방형 게시판에서 교묘하고도 대담한 방식으로 여론몰이에 나선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검찰이 지난 6월 이 사건을 기소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범죄일람표’에는 국정원이 네이버 지식인, 다음 아고라, 네이트 판 같은 대형 포털의 여론 형성 공간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들 개방형 게시판은 회원에 가입하지 않고도 누구든지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길 수 있어서 언론 기사가 수행하는 여론 수렴 기능과도 비교된다.
국정원은 19대 총선거 이후인 지난해 6월 4일 네이버 지식인에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국회입성에 대해 잇따라 글을 올렸다.
그 동안 공개된 국정원의 사이버 여론몰이의 습성을 고려할 때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이날 ‘임수경 북한(공산주의)을 넘 좋아 하나보네’라는 글을 올린 뒤 스스로 아래와 같은 답을 적어 놨다.
“그러게 말입니다...이해가 안되는 1인...북한 가서 살면.. 자신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한테 말이지요”
국정원은 또 ‘임수경 사퇴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질문을 던진 뒤 “국민과 여론이겠지요... 대한민국 국회의원인지 조선노동당 대의원인지 그 실체는 잘 모르겠는 사람... 국민과 여론이 힘을 모아서 사퇴를 시키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고 썼다.
이어 6월 6일 국정원은 네이버 지식인에 ‘종북, 좌빨’에 대한 개념을 올리기도 했다.
국정원은 “종북, 좌빨은 근본적으로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쓴 뒤 “이 사람들은 지금 엄연히 대한민국에서 적화통일을 위해 우리 사회를 공격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북한에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김정일 개ㅅㄲ라고는 못하면서 탈북자들에게는 반역자라고 욕하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이 무렵 네이버 지식인에 도배된 ‘re: 종북 주사파 이사람들 대체 뭔가요?’, ‘re:종북세력들의 국회 입성 무슨 말 인가요’, ‘re: 주사파 출신들은 국회에 들어가면 왜 안되나요’ ‘re: 종북 세력의 국회 입성 안 막고 뭐 하나요’ 등의 문답 글 역시 모두 국정원 소행인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밝혀졌다.
포털 네이트의 또 다른 개방형 게시판인 ‘판’에서도 국정원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지난해 2월 19일 국정원은 네이트 판에서 민주당의 부자증세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의 부자증세론에 대해 국정원은 “원시인 심리”라고 단정한 뒤 “‘부자와 대기업에게 세금을 더 많이 물리면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나고 복지천국이 될 수 있다’는 민주통합당의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몰아세웠다.
상위 1%인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세부담을 늘려 2017년까지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일자리, 주거 복지, 반값 등록금을 해결하겠다는 이른바 ‘3+3공약’에 대해 “지금보다 25조원 가량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한 복지정책이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동안 무엇 때문에 고민했던 것일까. 부자와 대기업만 족치면 될 것을 말이다.”라며 비웃었다.
국정원은 네이트 판 11월 17일자 글에서 여성부 권한을 강화하겠다던 안철수 원장의 공약에 대해 “국민의 뜻에 맞는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분이 어째서 국민 여론하나 제대로 캐치 못한대요? 여자인 나도 여성부는 싫은데”라는 반응을 싣기도 했다.
검찰의 ‘범죄일람표’에는 2009년에 국정원이 올린 다음 아고라 글들도 적시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지지, 미디어법 개정 찬성, 야당 정치인 비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글 52개가 ‘범죄일람표’에 실려 있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국정원 심리전단 1팀이 이들 글을 작성한 뒤 포탈 담당인 2팀에서 문제의 글을 유통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진 의원은 “검찰은 이제라도 포털을 담당한 심리전단 2팀의 활동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