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을 감옥에 넣어달라고 제주지방법원에 탄원하고 있다. 강정 주민인 올해 72살의 강부언 씨가 폭력행사와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는데 그를 석방하고 대신 자신들이 감옥에 가 있겠다는 것이다.
강 씨의 아내가 뇌졸중으로 거동을 못 하고 아내를 돌보던 강 씨마저도 고령에 병을 앓고 있다는 게 탄원의 이유이다. 강 씨는 해군기지 공사 반대운동 중 경찰관을 폭행하고 돌을 던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신 감옥에 가겠다고 나선 주민은 70여 명.
◈포승줄과 철창의 자유
우리 현실에서 대체복역, 대체수형 .... 뭐라 불러야 할 지 모를 이런 제도는 없다. 옛날에는 있었다더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조선시대 형벌과 관련된 기록에 사람을 사서 대신 감옥살이를 하게 한 사람과 이를 눈 감아 준 사람 모두 감옥 형에 처하라 되어 있다. 그러니 종종 벌어진 일인 것 맞지만 엄히 다스릴 불법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재벌을 다룬 드라마에서 회장 형의 죄를 부회장 동생이 덮어 쓰고 감옥에 가는 장면이 등장했었다. 그것은 서류와 진술을 조작해 대신 죄를 뒤집어쓰는 것이니까 사실상 위계,위증에 의해 법의 정당한 집행을 방해하는 법질서 교란행위이고 형벌을 대신해 주는 것과는 다른 문제.
TV 드라마가 참고한 사례는 아마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인 것으로 보인다. 군부정권이 들어서고 산업화 과정에 일부 기업이 재벌로 등극하던 시점에 삼성은 산업용 장비가 필요했고 정권은 정치자금이 필요했다. 생각해 낸 방법이 밀수였고, 한국비료밀수사건 이른 바 사카린 밀수 사건이 벌어진다.
이병철 당시 회장은 도덕적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나고, 법적인 책임은 당시 한국비료 상무를 맡았던 둘째 아들 이창희 씨가 짊어지고 감옥에 갔다. 큰 아들 이맹희 씨가 아버지를 대신해 그룹경영을 맡았고 훗날 실각하면서 삼성 패밀리의 전쟁과 분열이 시작된다.
요즘은 바지사장이 대신 감옥 가는 일이 흔하다. 조폭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들이다. 불법비리 사업에 돈을 받고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뒤 문제가 생기면 감옥도 대신 갔다 오는 방식이다. 인터넷에 ‘대신 감옥 가 드립니다’라고 광고하는 것들이 이런 바지사장 알선 현장이다.
최근 캐나다 온타리오 주 오타와에서는 기르던 애완견이 산책하던 여성을 공격해 큰 상처를 입히자 개 주인이 자기가 6달 동안 감옥 생활을 하겠으니 개의 안락사를 면케 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몇 년 전 네팔에서는 트럭이 사람을 치어 숨지게 했다. 트럭운전수가 자기 실수라며 징역 5년형을 받고 감옥에 갔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트럭의 원소유주가 아들을 운전 연습 시키다 사고를 냈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 트럭운전수가 감옥에 간 이유는 뭘까? 가족들이 먹고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어른들을 대신해 마을 아이들이 죄다 감옥에 가겠다고 나선 사건도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민권운동을 시작하던 1960년대 미국 앨라베마 주. 수영장.골프장에 흑인도 들어 갈 수 있다고 법원이 판결하자 곧바로 수영장.골프장을 폐업해 버릴 만큼 남부에서도 흑백차별이 극심하던 지역이다. 그 가운데 버밍햄 시는 특히 심했다.
킹 목사는 비폭력저항 중 하나로 거리행진 하다가 잡혀가자고 했다. 너도 나도 모두 잡혀가면 버밍햄 교도소, 경찰유치장이 꽉 들어차 혼란이 일게 되고 고 이 사정이 전국에 알려지길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식 걱정, 집 걱정, 일자리 걱정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나서서 생업에 매인 어른들을 대신해 거리행진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스스로 감옥행을 택한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그럴 수는 없다며 아이들을 만류했다. 하지만 흑인 아이들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찬송을 신호로 감옥에서 쓸 칫솔 하나씩만 든 채 행진을 시작했다. 하루에 500~800 명 씩 체포돼 감옥으로 가며 행진이 계속됐다. 감옥은 며칠 만에 가득 찼고 일주일 뒤 흑백인종 분리시설 완화와 흑인의 고용확대를 골자로 하는 시정안이 발표된다.
◈사회는 병들고 민중은 건강해
남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생겨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간단히 말해 그런 사람이 많다면 그 사회 민중은 건강한 것이고 사회는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걸 반증한다. 법의 처벌을 받은 사람을 대신해 이웃이 감옥에 갈 방법은 없다. 감옥에 대신 갈 수 없는 제주의 이웃들은 연로하고 병환 중인 노부부를 어찌 돌봐야 할 지 고민할 것이다. 사람 사는 게 이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당국은 뭘 고민할건가?
강정 마을 사건도 밀양 송전탑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국책사업, 공공사업이란 명분에 밀려 삶의 터전이 무너지면 의지할 곳 없는 주민들은 몸으로 막아선다. 충돌이 생기면 개발하는 쪽은 공무집행이고 주민은 당연히 공무집행 방해이다.
당국은 법대로 하니 기다리는 건 처벌과 감옥이다. 가난과 힘없음이 감옥 가는 이유이고, 권력의 야박한 개발이데올로기가 감옥 가는 배경이다. 군과 검찰이 늙고 병약한 노인을 감옥에 가두는 나라라니 ... 그 천박한 시대인식과 얄팍한 소양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