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일(서인국)과 우상(이종석)은 어릴 때부터 수영 유망주로 꼽히던 라이벌 관계였다. 하지만 우상이 한국 수영계의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는 동안, 천재로 불리던 원일은 수영을 그만두고 하루 하루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꿈도 내일도 없이 우스꽝스레 풀어진 모습의 원일과 전 국민의 마린보이로 성장한 우상은 각기 다른 이유를 지닌 채 명문 체고에서 다시 만나지만, 원일은 우상과의 정면승부를 자꾸만 피한다.
'크로스 게임' 'H2' '러프'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둔 아다치 미츠루는 야구, 수영, 권투 등 스포츠를 내세워 고교생들의 사랑과 우정, 꿈과 열정을 그린다.
그는 라이벌 관계인 두 남자 주인공과 그 사이에 있는 한두 명의 여자 주인공을 기본 구도로 한결같은 청춘예찬의 이야기들을 엮어간다.
그의 작품 속 두 주인공은 보통 은둔형 천재와 성실한 노력파로 설정되는데, 둘은 경쟁보다는 협력에 바탕을 둔 우정을 통해 진정한 라이벌로 거듭난다.
남녀 사이 애정 전선 역시 치열한 쟁탈전과는 거리가 멀다. 서로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풋풋하면서도 애잔한 사랑의 감정들을 쌓아가는 과정을 섬세한 심리묘사로 나타내는 까닭이다.
남녀 주인공들의 주변에는 절묘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도 특징이다.
영화 노브레싱은 이러한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만듦새를 지녔다.
다만 아다치 미츠루 작품 특유의 정적인 인물과 이야기 대신 역동성을 강조함으로써 영화라는 매체에 더욱 걸맞은 구도를 만들어냈다. 부모 세대와의 극심한 갈등처럼 한국적인 정서를 강화함으로써 관객과의 공감대를 넓히려 한 점도 눈길을 끈다.
극중 한 시간여 동안 먹고 자고 뒹구는 장면들로 웃음을 주는 서인국과 진지하게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이종석의 모습은, 나머지 한 시간 동안 부각되는 둘의 라이벌 구도로 옮겨가면서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가 주는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는 요소가 된다.
수영 장면들에 대한 연출도 합격점을 얻었다. 중학교 때까지 실제 수영선수로 활약했던 한 영화계 관계자는 "배우들의 영법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 많은 노력을 한 듯하다"며 "극중 수영선수들이 출발대에 선 장면에서 숨소리와 심장박동이 들려오는데, 예전에 그 자리에 섰을 때 기분이 들어 뭉클했다"고 전했다.
제목으로 쓰인 노브레싱은 호흡을 멈추고 물살을 가르는 영법을 뜻하는 수영 용어로, 극중 라이벌인 두 주인공의 열정과 꿈을 나타내는 장치로 쓰인다.
수영선수였던 원일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코치였던 재석을 연기한 박철민, 원일과 우상이 다니는 체고의 수영코치로 분한 박정철, 자식의 성공에 집착하는 한국형 부모인 우상의 아버지 역을 맡은 선우재덕 등 중견 연기자들의 가세는 극단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주는 든든한 힘이 된다.
극중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정은(권유리)은 가수를 꿈꾸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부르는 인상적인 노래 가사를 일부 소개하면 이렇다.
"사랑이란 힘이 놀라워. 많이 피곤해도 자꾸 웃게 해. 비 개인 오후 멋진 무지개처럼 너만 보면 힘이 솟아나. 우정이란 무슨 맛일까. 너만 생각하면 맛있는 하루. 시간에 쫓겨 밥을 못 먹더라도 마음만은 행복하니까."
최근 언론시사 당시 극 중간 중간 주인공들이 사랑과 우정을 나타내는 닭살 돋는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관람석 곳곳에서는 괴성이 들려 왔다.
청춘이라는 이름에서 멀어지고 있는, 한때 극중 주인공들처럼 젊음이라는 우산 아래서 우정과 사랑을 논했던 입장으로서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던 까닭도 조금은 있었을 터다.
'청춘은 아름답다'는 만고의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 주는 영화 노브레싱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118분 상영,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