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필(83) 씨는 부산진시장 2층이 고향이다. 집이다. 핏덩이였던 자신을 어머니가 업고 매일 지냈던 곳이다. 이후엔 자신이 50년 넘게 지냈다. 옷감을 하나씩 팔면서 쌀이 나왔고, 자식을 키웠으며, 그들을 시집까지 보냈다. 평생을 지내다보면 지루할 법도 할터. 하지만 가게를 접고도 매일 이곳을 들른다. 아직 장사를 하는 이웃들을 보러, 때로는 어떤 좋은 원단이 들어왔는지 궁금해서, 친구들과 시장 국수가 생각날 때도 들리곤 한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서 이곳에서 특별한 사람 냄새가 나는 이유다.
1913년, 동구 범일동의 버려진 공터에 이불, 포목, 의류 등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백평규모의 시장이 들어섰다.
이곳은 한 인생의 설레는 탄생과 애틋한 사랑, 또 아쉬운 죽음이 공존한다.
부산지역에 사는 이들이라면 출산을 앞둔 준비물, 결혼을 앞둔 혼수, 예단, 한복, 인생을 마무리하기 전에 마련하는 수의, 장례용품, 제사음식 등 인생의 중대사를 위해 한 번쯤 들렀던 곳, 바로 부산진시장이다.
가난과 전쟁, 부흥과 쇠퇴, 부산의 애환과 함께해 온 부산진시장이 28일, 개장 백 년을 맞았다.
몇 개 점포가 모여 형성된 부산진시장은 이제 8천8백여 평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에 들어선 상점만 2천5백여 곳, 혼수, 이불, 예단 전문 전통시장으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역사가 깊다 보니 상인들의 약 20%가 3대째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3대째 이불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봉순(69) 씨는 부산진시장에서 주는 지난 시간의 애틋함도 있지만, 손님들과의 각별한 인연에 좀처럼 가게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부산진시장에서 먹고, 자고, 함께 생활했어요. 25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 이제 조카와 며느리가 손발 역할을 하며 똑소리 나게 일을 잘 거 들고 있습니다. 언제가 제일 보람있냐고요? (호호) 그거야 옛 손님의 자식의 자식들이 또 찾을 때죠. 나와 비슷한 나이의 새색시들도 이제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려 손주 이불을 보러 온답니다. 그때 행복해요. 잊지 않고 계속 찾아주는 게..."
부산진시장은 백화점의 30%가량 되는 저렴한 가격과 뒤지지 않은 품질을 앞세워, 전통시장이 위협받는 가운데서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 유동인구만 약 5만여 명, 명절 때는 20만 명까지 모여 인근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다.
때문에 최근 진시장측은 불친절하고 상품 질이 좋지 않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품질 보증제, 상인들의 친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미래의 고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시장옷 패션쇼, 중고등학생들의 시장체험 투어, 또 온라인 쇼핑몰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젊은 시장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부산진시장 상인번영회 권택준 회장은 "최근에 40년 만에 폭 60cm에 불과한 통로를 1m 20cm로 2배나 늘렸다. 본인의 점포를 조금 양보하더라도 손님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자는 상인들의 공통한 마음으로 수십 년 만에 성사된 일이다"면서 "입점해 있는 모든 점포의 물건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사고 배달까지 가능해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고객들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와 편의점, 인터넷 쇼핑몰의 저가 공세에 밀려 점차 설 곳을 잃어가는 부산진시장.
상인들과 이용객들은 우리네 삶 속에서 함께 호흡해온 전통시장이 앞으로 제2의 도약을 맞이하길, 또 갈수록 강퍅해지는 인간관계에서 사람냄새는 훈훈함을 간직하길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