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녹십자'였다. 녹십자는 2001년 지주사 '녹십자홀딩스'와 사업사 '녹십자'로 분할하고, 헬스케어와 제약 부분으로 사업을 나눴다. 이후 대웅제약(2002)ㆍJW중외제약(2007)ㆍ한미약품(2010)이 지주사로 전환했다.
제약업체들이 지주사 체제를 갖추는 이유는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 회사가 지주사와 사업 자회사 둘로 나눠지기 때문에 각각의 파트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주사는 신규투자, 인수합병(M&A) 등 신사업을 추진하고, 사업사는 제조ㆍ판매와 연구개발(R&D)을 맡는다. 투자와 생산이 분리되는 만큼 리스크 또한 분산할 수 있다. 동아제약의 사례를 보면,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가 R&D를 맡고, '동아ST'는 전문의약품 분야를, '동아제약'은 박카스를 포함한 일반의약품 사업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지주사 체제전환의 또 다른 이유는 대주주 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오너 2ㆍ3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회사를 분할하면 일반적으로 사업사 주가가 지주사보다 오른다. 이때 대주주는 기존에 보유한 사업사 주식을 지주사 주식으로 교환해 (지주사) 지분을 늘릴 수 있다.
김응현 신한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사로 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장과 효율성 추구"라면서도 "하지만 대주주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경영권 강화에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대웅제약은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 이후 윤영환 회장 등 일가 지분이 13.2%에서 34.2%로 크게 늘어났다. JW중외제약은 이종호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이 지주사 전환 이후 46.6%까지 증가했다. 한미약품도 지주사 전환 이후 임성기 회장 등 오너 일가 지분이 26.63%에서 67.61%로 늘어났다. 종근당도 이장한 회장 등 일가 지분이 20.16%에서 40%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사업 효율성 높이고, 경영권 강화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상위권에 있는 제약업체 중 유한양행만은 지주사 전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오너가 없어서다.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유한재단(15.4%)이고, 유한학원이 2대 주주(7.57%)이다. 이 때문에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 유한재단은 유한양행 창립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남긴 유언에 따라 유한양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비영리단체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오너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지주사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는 이 부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지주사 전환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