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감사에서 이슈메이커로 등극했다. 가장 비정치적일 법한 이 기관이 왜 정치적 이슈가 되는 걸까?
국사편찬위원회 유영익 위원장의 개인적인 의혹과 흠결로 지적된 사항들은 아들의 한국 국적 포기와 특혜채용, 종교적 편향, 거짓해명과 위증, 평창동 부동산 불법증여 등이나 생략하고, 국사편찬이라는 공적인 임무에 관한 것만 언급하기로 하자.
국사편찬위원회는 1946년 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경복궁에 설치된 기관이 그 전신이다. 우리 역사의 사료들을 조사하고 모아서 분류정리해 보존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이를 편찬해 국민에게 보급하는 기능도 맡고 있다. 1960년대부터 ‘승정원일기’, ‘고종시대사’, ‘한국독립운동사’,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자료 대한민국사’, ‘한국사’, ‘한국사론’ 등 모두 81종 1천601책에 이르는 방대한 성과를 남겼다.
또한 한국사 관련 자료를 전산화해 학자들에게 제공한다. 국내 자료 뿐 아니라 나라 밖에 흩어져 있는 사료들을 조사해 모으고 편찬해 정보화하는 작업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역사학자들이 일일이 사료를 찾고 국내외 현장들을 뒤지지 않고도 국사편찬위의 사료를 토대로 저마다의 우리 역사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중국, 일본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였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주관하고 역사 교과서의 검정도 맡아 한 것이다. 역사적 자료의 수집편찬에서 한국사의 대중교육까지 맡게 된 셈이다.
내용에 5.16이나 광주항쟁,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짤막히 들어가게 되는 역사교과서는 국가 역사편찬과 섞이기에 곤란해 보인다. 불협화음이나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교과서 검증을 국사편찬위가 부담으로 질 필요는 없고 독립된 다른 기구에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국사능력검증시험도 취지는 좋았지만 점수관리 스펙 쌓기가 되어버려 역시 국사편찬의 고유업무와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업무이다.
국가 역사의 편찬이라는 공적직무를 수행하려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새로 들어선 정권이 이념적 색깔이 통하는 사람을 수장자리에 앉히는 것부터가 나라 역사를 정치도구로 쓰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문제는 역시 또 수첩인가?
물론 순수한 역사연구에서도 입장이 다르고 충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에서는 다른 편의 연구 내용이라 해도 검증된 것은 인정하고 나서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에 문제제기를 한다. 이념에서 진보와 보수로 나뉘고 자기 정파에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고 협상을 벌이는 정치가 국사연구에 녹아들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국사편찬위원장은 학자들이 논증을 하며 다툴 때 서로 다른 견해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할 역사학계의 축이다. 그런 자리의 인물이 이렇게 이념편향 시비에 휘말리고 개인적 치부까지 의혹거리가 된다면 결단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대통령 역시 이념적 성향이 뚜렷해 그걸 국사편찬에 적극 반영하라고 뽑은 것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사편찬위 또한 이 사태를 계기로 영역의 확대를 다시 검토해 가능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쪽으로 개선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