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없는 나라' 나우루, 10여년 만에 은행 재도입

내년 1월께 은행 서비스·금융상품 이용 가능 전망

현금 봉투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들, 모아둔 돈을 도둑맞을까 땅속에 묻어 두는 사람들….

모바일 뱅킹까지 가능한 21세기에 '현금 경제'로 돌아가는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 공화국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우루 땅에서 통장과 직불카드, 신용카드가 사라진 지 근 10년 만에 나우루 정부가 은행서비스를 재도입하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나우루도 한때는 활발한 금융 시스템을 자랑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돈세탁 은닉처를 제공한 혐의로 국제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현지 은행들의 면허가 잇따라 취소됐다.

이후 2006년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나우루 은행까지 문을 닫으면서 나우루는 말 그대로 '통장 없는 나라'가 됐다.

나우루의 국가경제는 지난 수십 년간 롤러코스터 같은 변화를 겪었다.


나우루는 섬 전체가 비료 원료로 쓰이는 인광석으로 이뤄져 있어 1980년대 인광석 수출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인광석 값이 내려가고 섬에 남은 자원도 바닥나면서 나우루 정부는 재정난에 허덕이게 됐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나우루가 다시금 은행 도입을 추진하게 된 것은 호주로부터 받은 지원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호주 정부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호주 쪽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이 늘어나자 나우루를 비롯한 주변 빈국들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대신 난민들을 수용할 캠프를 운영토록 했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이들 국가에서 대신 운영되는 난민캠프가 워낙 열악해 '불법적이며 비인도적'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나우루 입장에선 투자 자금을 얻을 좋은 기회였다.

나우루가 올해 호주로부터 받을 지원금은 2천700만 달러(약 286억7천만원)다. 이는 나우루 국내총생산(GDP)인 7천만 달러의 40%에 달하는 액수다.

나우루 정부는 이 같은 지원금을 바탕으로 호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은행인 '벤디고 앤드 애들레이드 은행'과 나우루 지사를 세우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데이비드 아데앙 나우루 재무장관은 나우루 국민이 내년 1월께부터 호주에서 제공되는 것과 동일한 은행 서비스와 금융 상품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예금자 보호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현지 정부 관계자는 정부와 국영회사가 새 은행의 가장 주된 고객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광산사용료를 받아온 토지소유자나 호주 기업과 거래해 온 상점들도 은행 업무 재개로 큰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나우루 국민인 지아 그루넬러(28)는 "은행이 정말 필요했다. 그동안 이자도 나오지 않는 돼지저금통에 돈을 모으느라 힘들었다"며 정부의 은행 재도입 소식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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