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아들 위해 '음료수 세 박스' 훔친 할머니

지적장애 40대 아들과 사는 할머니 안타까운 사연

전북 익산경찰서 김광석 형사는 지난 1일 익산시 중앙동의 한 낡은 집까지 차를 끌고 가 피의자를 모셔 왔다.

경찰서로 들어오는 피의자의 모습에 형사들은 놀랐다. 백발에 구부정한 허리,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거동조차 쉽지 않았다.

윤모(79) 할머니의 죄명은 절도. 지난 8월 31일과 9월 2일 익산시내 한 상가에서 음료수 3박스, 4만1500원 상당을 훔친 혐의다.

윤 할머니는 지적장애 2급인 아들(42)과 살고 있다. 모자의 수입은 아들 몫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등 40여만 원선. 다른 자녀들이 있는 탓에 할머니 몫의 정부지원금은 없다.


경찰조사에서 윤 할머니는 "정신이 안 좋은 나이 먹은 아들을 데리고 살려다 보니 음료수를 주인 몰래 실었다"고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연신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되뇌었다.

김 형사가 찾아갔을 때 윤 할머니의 집은 온갖 잡동사니로 뒤덮여 발 디딜 틈조차 없고, 쥐들이 들끓었다. 경찰은 익산시청에 할머니의 집 청소를 부탁했다. 그리고 익산서 범죄피해자보호위원회와 함께 할머니 집을 찾아 음료수와 화장지, 과일, 라면 등 생필품을 전달했다.

경찰은 유모차에 음료수 박스를 싣고 가는 할머니를 본 목격자가 있어 어렵지 않게 윤 할머니를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딱한 할머니의 사정을 안 탓에 처벌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새다.

익산경찰서 관계자는 "할머니가 고령이고 피해사실이 경미하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고 있다"며 "이런 점 등을 고려해 절도 혐의에 대한 입건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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