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생' 최승현 "열아홉살 북한청년 리명훈은 내 거울상"

[노컷인터뷰] 고교생으로 위장한 남파공작원 연기 "가수·배우 정체성 혼돈…용감한 모험"

배우 최승현(사진=이명진 기자)
우리나라에서는 '의형제'(2010), '베를린'(2012) 등을 필두로 최근 몇 년 새 남과 북의 대결 구도를 다룬 첩보물이 부흥기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념으로 분단된 세계 유일의 나라라는 특별한 상황이 낳은 산물.

6일 개봉한 영화 '동창생' 역시 첩보액션물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이 앞선 세대가 만들어놓은 부조리한 세상에 내던져지는 10대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비극의 기운을 감지한 관객들도 적잖으리라.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최승현(26)도 시나리오를 통해 일찍이 그 기운을 감지한 관객 중 한 명이다.

그는 극중 남한에서 고등학생 강대호로 위장해 공작원으로 살아가는 열아홉 살 북한 청년 리명훈을 연기했는데, 리명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탑이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다가도 혼자 있을 때면 혼돈이 와요. 최승현이라는 사람을 잊고 산다는, 막상 나의 본질이 없어지고 있다는, 껍데기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요. 그런 면에서 강대호로 살아야 했던 리명훈에게서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사는 현실의 제 모습을 본 거죠."
 
남북 분단의 고착을 부른 6·25전쟁이 터진지 60년을 훌쩍 넘긴 지금,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다시 자식을 낳아 전쟁 3세대에 이르렀다. 전쟁 3세대의 한 명으로서 최승현은 "젊은 세대에게 분단은 우리가 당면한 비극의 느낌이 큰 듯하다"고 했다.
 
"남북 문제를 접하면 정치적 테두리로 보기 보다는 어떤 보편적인 아픔이 먼저 와요. 동창생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애나 그리움 같은 순수함이 제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였죠."
 
질문에 답하는 그의 자세는 자못 진중했다. 빈말을 뱉어내지 않으려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를 두려는 신중함은 스스로를 아티스트라 칭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드러내려는 의지로 다가왔다.

배우 최승현(사진=이명진 기자)
-'포화속으로'(2010) 이후 3년 만의 영화다.
 
"처음 동창생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중간까지 보고 닫았다. 생각이 복잡했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대단한 역할은 아니었지만 킬러를 연기했는데, 비슷한 느낌이어서 신선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꺼려졌다. 또 너무 어두운 것을 하면 관객들이 볼 때 이미지가 고정될 것 같은 걱정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닫고 2주 정도 생각했다. 주위에서는 '왜 답이 없냐'고 물으시고. 결국 이 캐릭터를 제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들어온 것이라는 데 생각이 기울더라. 어두운 캐릭터도 끝까지 가본 다음에 변신을 고려하자고 마음을 굳히고 출연을 결심했다."

-수많은 출연 제의가 있었을 텐데.
 
"사극,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등 여러 장르가 있었다. 동창생 시나리오를 보면서 리명훈이라는 인물의 진심을 느꼈다. 극단의 상황에서도 그 속을 알 수 없는 깊이가 제 마음을 움직였다. 영화 'AI'(2001)의 꼬마 로봇이 처했던 상황, 가타카(1997)에서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던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창생이 분단 상황에 놓인 한 청년의 정체성에 관한 영화로 다가온 까닭이다."

-눈빛 연기에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액션보다는 눈빛으로 두 시간의 런닝타임을 끌고 가야 한다는 점이 생소했지만 끌렸다. 눈빛으로 극중 인물들은 모르지만, 관객들이 알아야 할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각각의 배우들과 만나서 촬영한 것은 2, 3일에 불과했다. 상상하면서 연기해야 했던 것이 어려웠는데, 상대 배우보다는 관객과 호흡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자기 연기를 스스로 평가하면.

"개인적으로 제 연기를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보려고 애쓰는데, 흡족한 부분이 많이 없다. 나쁜 생각을 갖고 나를 보면 안 좋은 것들이 고쳐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조금씩 미흡한 부분들이 메워지는 거라 생각한다."

-또래 젊은 배우들을 보면 직업적인 자부심이 대단해 보이더라.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본다. 예전에는 겸손함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젊은이가 가진 자신감을 좋아하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것이 대중들도 에너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 경우 주위의 권유로 멋모르고 용감하게 연기를 시작했지만, 연륜을 지닌 선배님들과 호흡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포화 속으로를 통해 신인상을 여러 개 받으면서 어설프게 하면 안 되겠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다. 정석에서 벗어나 독특한 의외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가수보다는 배우 이미지가 강해지는 듯하다.
 
"배우만 할 생각 없다. 가수 탑과 배우 최승현을 별게로 가져가고 싶다. 강렬한 순간을 접하면 영화적 상상보다는 가사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나다. 물론 균형을 맞추는 데 혼돈이 따른다. 똑같이 가져가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동창생 개봉과 맞물려 이달 중순 새로운 곡을 내고 가수 활동을 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번 신곡 가사에도 두 가지 길을 병행해 가겠다는, 정체성을 찾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현재 가요계에 대한 비판도 추상적이면서 직설적인 메시지로 전달하려고 했다. 제가 아이디어를 낸 뮤직비디오도 일부러 상업성을 배제하고 한 장면 한 장면 상징적인 것을 표현하려 했다. 영상과 음악이 서로 보완하는 셈이다."

-배우와 가수의 길을 어떻게 병행할 생각인가.
 
"두 분야 모두 쉬고 싶다고 쉬거나, 하고 싶다고 하는 분야가 아니다. 운명적이다. 이제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운명에 맞서려 한다. 기다리던 어떤 것이 나타났을 때 용감하게 풀어나가고 싶다. 지금은 얼마나 많이 하냐 보다는 어떤 것을 하냐가 중요한 시기다.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기도 하다. 영화 동창생도, 이번에 나올 신곡도 모두 모험일 수 있다. 동창생의 리명훈에게서 음악으로 치면 가사 없이 콘서트를 끌어가려 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면 행복할 것 같다. 신곡 역시 제 나름의 용감한 모험을 예쁘게, 즐겁게 받아들여 주신다면 젋은 아티스트로서 더욱 용감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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