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노동자의 존재방식이 워킹푸어?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통계청이 9월 청년 취업 상황을 발표했다. 20세에서 29세까지의 청년 취업자는 360만7천명. 지난해 9월에 비해 3만2000명이 늘어난 숫자이다. 20대 취업자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늘어난 건 1년 반 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취업증가의 이면은 그리 대단치 않다. 9월 추석연휴 때문에 생겨난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걸 확인해 주는 통계가 대학재학생 취업과 비재학생 취업이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 취업자가 4만8천명 늘었는데 비재학생은 만6천명이 줄었다.

통계청의 ‘8월 근로형태별 및 비임금 근로 부가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취업해 임금을 받는 우리나라 근로자 수는 천824만 명으로 1년 전보다 2.9% 늘었다.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2.6% 이다. 비정규직이 절반인 시대라고 이야기하는데 32.6%에 그친 까닭은 분류기준의 문제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국제표준기준은 없다. OECD는 임시로 일자리를 잡은 근로자는 비정규직으로 보는 단순한 기준. 미국은 근로시간, 취업이나 재취업 대기 기간 등을 따져 6단계로 나누고 정규 비정규를 구분치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계는 임시직(1년 미만), 일용직(1달 미만)과 상용직(1년 이상) 중 비정규직을 합쳐서 비정규직으로 파악하는데 노사정위원회는 한시적 근로, 단시간 근로, 비전형근로자만 비정규직으로 계산한다.

비전형근로는 일하는 기간(임시.일용.상용)이나 시간(파트타임의 기준이 아니라 고용된 방식으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파견근로자, 용역근로자, 특수형태근로, 재택근로자, 일일(호출)근로자들을 가리킨다.

맨 뒤에 놓인 호출근로자는 'on call worker'의 번역인데 보통은 일일근로자로 분류된다. 고용과 관련된 계약이 없이 일거리가 생겼을 때 며칠이나 몇 주 정도 일하는 근로자가 일일근로자. 일거리 있으니 나오라고 메시지가 뜨면 불려나가 일한다고 호출근로자라고도 한다.

새벽 노동시장에서 그때 그때 고용돼 일하는 일용직 건설근로자, 행사도우미, 가사 도우미, 간병인 등이 여기에 속한다. 2007년에 84만 6천 명으로 전체 비정규직 가운데 5.3%를 차지했다. 2013년 호출근로노동자는 84만7000명이다. 고용보험, 연금 등의 보장이 없는 고용불안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셈이다.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비정규직은 대체로 50 정도이고 용역근로자는 45정도로 추산하는데 호출근로자는 더 내려가 35 안팎으로 보고 있다.

대리기사나 퀵 서비스는 호출근로가 아닌 특수고용으로 분류한다. 대리기사 퀵 서비스, 화물차 운전자도 개인사업자 성격을 띤다고 해서 특수라고 부르지만 사실 밤이고 새벽이고 문자메시지 오면 달려가는 호출근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밖에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골프장 캐디 등도 특수고용이다. ‘자영업’처럼 분류돼 임금노동자로 공인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골치 아프게 하지 말라는 사회적 따돌림이 담겨 있다.

◈ 비정규 노동자 모두의 이름... '워킹푸어'

호출 근로, 특수근로... 비정규직의 분류가 복잡해지는 까닭은 기업이나 건설 현장, 점포, 서비스 업종 등에서 비정규직 고용마저 피하려고 다양한 형태의 변형된 근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리 나누고 저리 분류해도 어차피 죽어라 일해도 가난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들의 이름은 하나다. '워킹 푸어'(working poor).

맨 밑에 위치한 호출근로를 포함해 워킹푸어가 의미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 연금 없고 보험 없는 노인이 된다는 뜻이다. 또 그 자녀세대 역시 워킹 푸어로 남기 십상이라는 대물림의 문제도 있다. 이 배경에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경기침체, 고령화, 재취업 훈련과 재취업 시스템 등 사회보장 미비...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

이것은 ‘워킹푸어’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책임과 과제이며 함께 풀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근로자 종류를 세분화하고 통계방식을 이리저리 조정해 실업률 수치만 낮출 게 아니라 죽어라 일하고도 가난한 사람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자꾸 생겨나는 지 파악해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워킹푸어’는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를 계속해 ‘워킹푸어’와 ‘워킹푸어의 대물림’으로 이어갈 것인가, 워킹푸어는 개인의 능력과 경기침체로 인한 그들의 문제이고 일시적인 문제라 떠밀 것인가, 그냥 이대로 죽을 사람 죽고 살 사람 사는 게 대한민국의 선진미래창조 방식인가? 워킹푸어는 우리의 존재 이유와 존재 방식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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