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하이옌이 이번 총회의 중요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협상 진전의 기폭제로 작용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필리핀 수석대표인 예브 사노 기후변화담당관은 이번 총회 기간에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11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밝혔다.
사노 담당관은 "먹을 것을 찾으러 고투하는 내 동포들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이제부터 기후를 위한 자발적 단식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눈물을 글썽이면서 자국의 태풍 피해 상황을 절절하게 호소했으며 강대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 부족을 질타했다.
그는 "내 조국이 극심한 기후변화 때문에 정신 나간 상황(madness)을 겪고 있다"며 "이 미친 짓을 지금 여기 바르샤바에서 멈출 수 있다"고 역설했다.
사노 담당관은 자신의 가족이 사는 곳 근처에도 태풍이 상륙했다며 "지난 이틀 동안 내 형제가 자기 손으로 시신을 수습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아직 일부 친척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며 목이 메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태풍을 피해 도망치고, 가족을 대피시키고, 황폐함과 비참함을 경험하고, 사망자의 수를 헤아리면서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4개국 대표단은 그의 연설이 끝나자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대표단은 이날 중국의 제안으로 약 3분간 태풍 피해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기도 했다. 일부는 눈시울을 붉힌 것으로 전해졌다.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도 "슈퍼 태풍 하이옌이 불러온 비극적 결과는 '행동에 나서지 않은 대가'를 혹독하게 상기시킨다"며 목소리를 보탰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UNFCCC 사무총장은 개막연설에서 태풍 하이옌 등은 '정신이 번쩍 드는 현실'이라며 "이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게임'이 아니며, 승자도 패자도 없고 모두 이기거나 질 뿐"이라고 경고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기후변화 논의의 장으로서는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다. 이번 19차 총회는 11일부터 22일까지 바르샤바에서 열리며,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방식 등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