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집권이후 최대 야심작으로 추진해온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안)가 출발부터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탓이다.
당초 시행 첫달 50만명이 가입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2만7천명이 가입하는 데 그쳤고, 기존 보험 가입자 200만여명이 무더기 해약되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우리가 실수했다(We fumbled it)"고 시인했다.
지난 9월 셧다운(연방정부 부분 업무정지)도 불사하며 오바마케어 폐지를 밀어붙이던 공화당을 향해 "할테면 해보라"며 좀처럼 물러서지 않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면서 기존 보험 가입자가 오바마케어 요건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이를 1년간 인정해준다는 '임시변통' 조치를 내놨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처럼 태도를 굽히고 나온데에는 그만큼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흐르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번 등록차질 사태가 단순히 기술적 오류에 그치지 않고 제도 자체의 결함 논란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국정 최대 업적으로 평가해온 오바마케어가 계속 차질을 빚으면서 '실패작'으로 인식될 경우 국정운영의 신뢰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면서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지적이다.
바꿔 말해 상황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이미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레임덕'이 실질적 국면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다.
미국 퀴니피악 대학교가 이번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오바마 대통령을 '부정직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특히 13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유거브(YouGov)에 따르면 오바마케어 정보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오바마 대통령(11%)보다는 폭스뉴스(19%)를 더 신뢰한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조차 오바마 대통령을 공격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중간선거와 2016년 대선가도에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위기의식이 발동되고 있는 분위기다.
정치적 버팀목의 역할을 해온 빌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비판대열에 합류한 것은 그만큼 민주당 진영 내부의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2일 온라인 잡지인 '오지'(Ozy)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기존 새 제도 도입 이후에도 기존 건강보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셧다운 책임론에 시달리며 수렁에 빠졌던 공화당은 모처럼의 호기를 잡은 듯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특히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기존 건강보험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허용하는 내용의 별도 법안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오바마케어 제도 자체를 무효화하려는 시도라고 보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정국은 오바마케어의 존폐를 둘러싸고 공화당과 오바마 행정부·민주당이 전면전을 펼치는 대결구도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년 초 예산안 및 채무조정 협상 국면으로까지 이어지며 연말 정국의 불안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