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난민' 양산하는 호주 학생비자

호주 학생비자가 국내에서의 취업난을 피해 호주행을 택한 청년층의 '체류기간 연장용'으로 변질되면서 '취업 난민'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호주 주재 한국 공관과 유학생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호주 학생비자는 원래 어학연수나 직업교육, 학위취득 등의 목적으로 호주를 찾는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비자지만 적잖은 한국인들이 이를 '체류기간 연장용'으로 이용하는 실정이다.

호주 학생비자는 체류기간이 최대 1년으로 제한돼 있는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 비자와 달리 호주 정부가 인가한 학교시설에 등록한 뒤 일정한 요건만 채우면 몇 년이고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취업난에 시달리는 많은 청년들이 나이제한 외에는 특별한 자격요건이 없는 워홀 비자를 이용해 일단 호주땅을 밟은 다음 1∼2년 뒤에 학생비자로 갈아타 몇 년이고 호주에 머무는 것이 일종의 패턴처럼 돼 있다.

문제는 많은 중·고졸 혹은 대졸자들이 취업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돌파구로 호주행을 택하지만 정해진 비자 기간이 만료돼 귀국하더라도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에 계속 호주에 눌러앉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학생비자로 4년째 호주에 체류하고 있는 김주연(가명·27) 씨는 "처음에 워홀 비자로 호주에 왔다가 학생비자로 갈아타 4년째 머물고 있다"며 "귀국해봤자 취업이 어려울 것 같아 호주에 눌러 앉았지만 여기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카페나 식당 등에서 저임금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직업교육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 씨의 유일한 희망은 호주 영주권을 취득해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지만 호주 정부가 갈수록 영주권 발급기준을 강화하는 추세여서 이마저도 쉽지 않다.

또 호주의 주택 임차료와 각종 생활물가가 살인적이다 보니 학생비자 소지자의 경우 주당 20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규정을 어기고 돈벌이를 하는 법 위반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학생비자 소지자 권혜리(가명·24·여) 씨는 "공부를 하기 위해 학생비자를 땄다기보다는 호주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땄다"며 "카페 아르바이트만으로는 생활에 한계가 있어 유흥업소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실토했다.

권씨는 또 "국내에서 취업이 어려워 호주에 왔지만 호주에서도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라며 "귀국해봤자 뾰족한 수가 없어 돈이라도 벌어보자는 심정으로 학생비자를 이용해 호주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와 같이 거래 근거가 남지 않도록 현금으로 임금을 지급받는 이른바 '캐시잡'을 뛸 경우 학생비자 소지자 근로시간 제한규정에 걸리지 않고 돈벌이를 할 수 있어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이런 편법을 이용하고 있다.

시드니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아시아계가 운영하는 일부 어학원의 경우 아예 체류기간 연장과 돈벌이 목적으로 학생비자를 따는 한국인들을 위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며 "취업난 때문에 귀국도 못하고 어영부영 호주에 눌러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취업난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호주 내 한국 유학생 수는 2009년 3만5천656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2만7천719명의 유학생이 호주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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