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폴란드 남부 오시비엥침에 있는 옛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를 방문했다.
유엔 사무총장의 이례적인 수용소 방문으로 현지의 분위기는 고조됐다. 반 총장은 역사적 의미를 한껏 발현하려는 듯 수용소 곳곳을 직접 찾았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lbeit Macht Frei)라는 유명한 문구가 적힌 수용소 입구를 지나 이곳에서 희생된 수감자들의 소지품과 유골을 담은 항아리 등을 먼저 둘러봤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마리안 투르스키 국제아우슈비츠위원회 부의장 등 관계자들과 수천 명의 수감자가 총살당한 처형장의 벽에 헌화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이어 가스실, 죽음의 문, 화장장을 등을 지나 일명 `사우나'로 부르는 유대인 탈의장에서 방명록에 "깊은 슬픔으로, 하지만 평등과 인간의 존엄, 그리고 평화의 세상을 이루겠다는 커다란 결심"이라고 적은 뒤 연설했다.
반 총장은 "나는 안경, 머리카락, 신발, 인형, 기도용 숄 등을 보면서 이곳에 있던 희생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살인 공장'을 설계한 이들의 잔인함에 전율한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를 "악의 진원이자 체계화된 살인"이라고 지칭한 뒤 "600만 명의 무고한 유대인이 죽었고, 이중 100만 명의 어린이가 학대를 받고 처형을 당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유일무이하다"고 지적했다.
반 총장은 그러나 "아우슈비치와 비르케나우는 단순한 잔혹 행위의 기록일 뿐 아니라 용기와 희망의 보고"라면서 "오늘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크고 명확한 목소리로 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유대주의는 유럽 등 여러 곳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이민자, 무슬림, 여성,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은 증가하는 차별에 직면해 있다"며 "세계는 홀로코스트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하고 경시하거나 부인해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인류 가족의 일원으로서 평화와 정의, 평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세상을 만들자"라고 역설했다.
이날 반 총장의 아우슈비츠 방문에 대해 관계자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경각심을 재고하는 큰 걸음"이라고 환영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라바엘 라우는 "반 총장의 오늘 아우슈비츠 방문은 인류의 혜택을 위한 그의 노력을 증명한 것이다. 과거와 같은 공포는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아우스비츠위원회의 크리스토프 호이브너 부회장은 "반 총장은 역사의 깊은 곳을 보려는 조용하지만 신중한 분이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꼭 와야 할 곳을 방문한 것"이라고 반겼다.
이날 반 총장과 함께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 헌화한 독일인 필립 쿠오마야(20)씨는 "오늘 행사에 초대받아 매우 영광"이라면서 "반 총장의 방문으로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은 아우슈비츠 방문을 마친 뒤 이날 저녁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 장소인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