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스포츠레터]영화 '머니볼'과 FA시장 광풍

올 시즌 FA 시장을 뜨겁게 달군 롯데 강민호, 한화 정근우 이용규, KIA 이대형, NC 이종욱, 삼성 장원삼.(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자료사진)
사상 최대 돈잔치가 벌어졌던 올해 프로야구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이 막을 내렸습니다. 15명 선수에 무려 523억 5000만 원. 역대 스토브리그 최고액이던 2011년(261억 5000만 원)의 두 배를 훌쩍 넘긴 거액입니다.

강민호(롯데), 정근우, 이용규(이상 한화), 이종욱(NC) 등 국가대표 등 대어들이 즐비하기도 했지만 FA 시장이 이상 과열 기류를 보였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선수의 실제 가치보다 높게 금액이 형성됐다는 겁니다.

올해 FA시장에 대한 찬반 양론도 분분합니다. 선수들의 동기 부여와 경기력 향상, 구단 성적 상승이라는 훈풍과 거품 논란과 위화감 조성, 구단 재정 위기 등 삭풍이 공존하는 모양새입니다.

올해 FA 계약을 정리하고 삼성의 아시아시리즈 준결승 기사까지 마무리하고 채널을 돌렸더니 때마침 영화 '머니볼'이 나오더군요. 익히 얘기는 들었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는데 머리도 식힐 겸 또 국내 야구와 맞붙려 얻을 게 있겠다 싶어 심야 시간임에도 흔쾌히 시청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2002년 오클랜드 돌풍 실화 영화 '머니볼'

적잖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가난한 구단이자 약체 오클랜드가 기존 야구 통념을 깨는 통계에 근거한 새로운 이론으로 성공한다는 내용입니다.

대표적인 게 '득점=승리' 공식에 입각해 타율보다 출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입니다. 이에 따라 부상 전력 등으로 실제 가치보다 저평가된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실존 인물인 빌리 빈 단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오클랜드는 2002년 총 연봉 4100만 달러의 선수 구성으로 세 배가 넘는 뉴욕 양키스(1억2500만 달러)와 같은 정규리그 103승을 올리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2001년 102승을 이끈 제이슨 지암비, 조니 데이먼, 제이슨 이스링하우젠 등 주력 선수 3명이 떠나는 악조건을 이겨냈습니다. 영화에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오클랜드는 마크 멀더, 팀 허드슨, 배리 지토 등 선발 3인방을 발굴해냅니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머니볼'은 바로 오클랜드처럼 돈 없는 구단이 부자 구단과 싸워 이기는 방법으로 통합니다. 빈 단장의 얘기를 담은 2003년 마이클 루이스의 책과 동명입니다.

▲"국내 구단, 비전 없이 원초적 운영"

'억 소리 나네' 올 시즌 15명 FA들의 계약 현황. 523억 5000만 원으로 1명 평균 35억 원 가까운 거액이다.
'머니볼'을 보고 나니 올해 한국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의 이상 열기를 과연 어떻게 봐야 할지 적잖게 혼란스럽더군요.

물론 우리와 미국 야구의 현실은 엄연히 다릅니다. 지난해까지 고교팀 53개로 미국의 1만7000여 개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한국은 선수를 발굴, 육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성적을 내기 위해 한정된 선수들을 경쟁을 통해 영입하는 게 최선일 수 있습니다. 또 메이저리그 방식을 더 우월하게 여기는 사대주의도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FA들이 정말로 합당하게 가치를 인정받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통산 성적과 향후 가능성, 팀 기여도 등이 제대로 산정이 된 금액인지 궁금합니다. 모 구단 전 감독은 "계약 발표를 보면 저 선수가 정말 저 돈을 받는 건지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모 해설위원은 "우리 FA계약은 복불복인 것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어느 해는 선수 평가가 정말 박한데 올해처럼 거품이 많은 해도 있는 등 시장 평가가 들쭉날쭉한다는 겁니다.

때문에 구단 운영이 "원초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돈을 안 쓰는 것 같다가도 팬들의 비난이 빗발치면 180도 바뀌어 움직인다는 겁니다. 물론 팬심을 반영해야 하는 게 구단의 숙명이지만 수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계획이 아닌 즉흥적인 결단으로 수십 억 원의 돈이 왔다갔다 한다는 겁니다.

▲FA시장 과열, 필연적 결과일 수도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FA 몸값 폭등은 필연적일 수 있습니다. 2008년 현대의 후신으로 올해 창단 첫 가을야구를 경험한 넥센과 올해 1군에 합류한 신생팀 NC 돌풍, 여기에 10구단 KT의 창단까지 10개 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때문에 FA 과열 조짐도 몇 년 전부터 감지돼 왔습니다. 한 구단 단장은 "2011년 넥센 이택근과 지난해 KIA 김주찬이 50억 원 계약을 한 게 FA시장 과열의 시작이었다"고 말합니다. 포스트시즌 진출과 우승에 목말랐던 넥센, KIA로서는 필요한 선택을 한 겁니다.

여기에 이대호와 류현진(LA 다저스) 등의 일본과 미국 진출로 국내 야구는 스타 기근 현상을 맞게 됐습니다. 올해 윤석민, 오승환까지 가세한 해외 진출 러시는 앞으로도 각 구단들의 걱정거리입니다. 선수들의 주가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올해 FA시장 과열은 류현진과 이대호가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대호를 놓친 롯데가 필사적으로 강민호를 붙들었고, 한화의 통 큰 베팅도 류현진의 미국 진출로 받은 이적료 280억 원이라는 든든한 실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겁니다.

▲"돈으로 승부보다 자생력도 갖춰야"

'아직은 뜨거운 야구 열기' 올해 프로야구는 9구단 체제임에도 지난해 700만 관중 시대에서 600만으로 줄었다. 내년에는 월드컵까지 있어 관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사진은 올해 포항 올스타전 경기 모습.(자료사진=윤성호 기자)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 현실에서 이대로 가는 게 맞는 길일까요? 자생력이 부족해 모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구단들이 지금처럼 막대한 돈을 쓰는 것이 진정한 프로스포츠의 미래일지는 의문입니다.

예전 창단과 해체를 반복했던 인천 연고팀은 물론 쌍방울, 굴지의 모기업을 가졌던 현대의 전철을 생각하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지원이 풍족한 팀이라도 모기업 재정 상태에 따라 상황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올해 FA시장에서 움츠러들었던 팀들도 모기업의 여건이나 그룹 고위층의 지시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겁니다.

감독 출신 모 해설위원은 "지금처럼 가다가는 기업이 부담을 느끼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한껏 부풀려진 선수들 몸값은 내려가기 힘들 텐데 구단 지원이 끊기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겁니다.

프로스포츠의 천국 미국에서도 최고 인기를 누리는 메이저리그는 적잖게 다릅니다. TV 중계권과 입장 수익, 용품 판매 등 자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전문 해설위원은 "전국 중계권료로 각 구단이 2500만 달러(약 260억 원)을 받고 LA 다저스의 8조 원대 등 나 양키스 등 인기 구단은 지역 중계권만으로도 구단을 꾸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선수들 몸값이 무턱대고 치솟는 것도 아닙니다. 송위원은 "최고 연봉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양키스, 10년 2억 7500만 달러) 이후 각 팀들도 부담을 느껴 웬만하면 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올해도 로빈슨 카노가 3억 달러를 주장하지만 현지에서는 냉담한 분위기"라고 설명합니다. 각 구단들이 스스로 자제 노력을 한다는 겁니다.

일단 맺은 FA 계약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년 시즌 FA들이 과연 몸값에 걸맞는 가치를 입증할지, 또 그게 팀 성적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따라야 할 겁니다.

P.S-영화 머니볼에서 빈 단장은 2002시즌 뒤 명문 부자구단 보스턴의 거액 제안을 거절하고 오클랜드에 남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든든한 지원을 받아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 우승에 더 가까워질 조건을 뿌리친 겁니다. 빈 단장의 마지막 대사는 "여기에서 이기고 싶다"였습니다. 돈으로 특급 선수들을 사오는 편한 방법보다 유망주들을 키워내 결실을 맺는 구단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우리 프로야구에도 분명히 한 팀 정도는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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