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의 눈물' 언제쯤 닦아낼 수 있을까

피폭 건물 신축, 대피소 7곳 건립 완료…군 대응능력도 강화
서해5도 발전계획 일부사업 차질…급감하는 꽃게 어획량에 어민 시름

인천 연평도 북단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여느 바다와 다를 게 없다.

푸른 수면 위로 하얀 포말이 언뜻거리고 빛바랜 낡은 어선 여남은 척이 고기를 낚는 그런 평범한 풍경은 20일 오후 기자가 전망대에 올랐을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연평도 앞바다는 세계 어느 바다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손을 뻗치면 닿을 듯한 북한의 섬들과 연평도 사이에는 북방한계선(NLL)이 가로질러져 있다. 연평도에서 북쪽으로 불과 1.4km 떨어진 곳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 선을 사수하기 위해 우리의 젊은 병사들은 열정과 청춘을 바쳤고 때론 목숨마저 내던졌다.

NLL이 지나는 위치가 어디쯤일까 가늠해보다가 북쪽으로 더 올려다보니 북한 황해남도의 해안선과 그 앞의 갈도·장재도·석도 등이 아련하게 보였다. 크고 작은 섬들이 오롱조롱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 평온함마저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3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바로 이곳 개머리 해안포기지는 불을 뿜어대며 연평도의 군부대와 민가를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170여 발의 포탄에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 등 4명이 숨졌다. 민가·상가 등 42채의 건물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타격해 민간인을 숨지게 한 사상 유례가 없는 북의 도발이었다.

망향전망대에서 내려와 연평도 안보교육장으로 가 보니 3년 전 참상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당시 포격을 당한 주택 3채는 복구작업 없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와르르 무너져내린 기와지붕, 검게 그을린 외벽, 불에 탄 채 고철 덩어리가 돼 버린 오토바이 등은 그날의 참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연평종합운동장 외벽에도 커다란 포탄 구멍 속으로 앙상한 철근이 그대로 보였다.

그래도 포탄 구멍에서 푸른 새싹이 피어나는 모습을 그린 벽화처럼 북의 포격도발 후 3년이 지나면서 연평도는 충격과 공포를 딛고 서서히 예전의 평온함을 되찾고 있다.

북의 포격을 받은 건물 42채는 일부가 합쳐져 32채의 신축 건물로 거듭났다. 포격 직후 허둥지둥 섬을 빠져나와 찜질방, 김포 미분양 아파트, 연평초등학교 내 임시주택을 전전했던 주민들도 이제는 새 보금자리에서 일상을 되찾고 있다.

연평도 신규 대피소 7곳의 건설사업도 작년 말 모두 마무리됐다. 신축 대피소는 165∼660㎡ 규모로 200∼8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다. 난방시설과 발전시설이 충분치 않아 어둡고 싸늘했던 기존 대피소의 문제점은 대부분 개선됐다.

우리 군의 군사적 대응능력도 대폭 강화됐다.

연평도 포격도발을 계기로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2011년 8월 창설됐고 예하 해병대 6여단과 연평부대 등에 병력 1천200여 명이 추가 배치됐다.

포격전 당시 유일한 대응수단이었던 K-9 자주포(사거리 40㎞)의 문수는 2~3배 늘었다. 다연장 로켓, 신형 대포병레이더(ARTHUR), 코브라 공격헬기, K-10 탄약운반차량 등도 서북도서에 신규 혹은 추가 배치됐다.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장인 주종화 대령은 "연평도 포격전 당시 해병들은 적의 포격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투혼을 발휘했다"며 "적이 또다시 도발하면 무자비하게 응징한다는 것이 해병대 전 장병의 똑같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연평도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인천시는 내년도 서해 5도 발전계획 사업 예산으로 국비 413억원을 신청했지만 절반 수준인 243억원만 반영됐다. 지난해에도 시는 국비 500억원을 신청했지만 정부는 374억원만 반영했다.

이 때문에 관광객 유인과 섬 주민 교통편의를 높이기 위해 뱃삯을 지원하는 팸투어 사업은 국비 지원 없이 시비와 군비로 충당하고 있다. 낡은 병원선 교체, 어업지도선 개량, 민박·팬션 확충 계획 등도 국비가 배정되지 않아 아예 발이 묶였다.

옹진군의 한 관계자는 "관광객을 늘려 섬 주민들의 실질 소득을 높여줘야 하는데 관광 인프라 조성 관련 예산이 전혀 지원되지 않고 있다"며 "문화체육관광부 관련 예산은 올해 1억원 밖에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연평도 대부분 주민의 생업인 꽃게조업도 최근 신통치 않아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날 새벽 조업을 나간 꽃게잡이 어선 24척은 오후 연평도 당섬부두로 하나 둘 힘없이 귀항했다. 힘차게 펄떡이는 꽃게로 가득 차야 할 선창은 반도 채우지 못한 채 비어 있었다.

연평어장의 어획량은 2009년 이후 4년째 감소 추세다. 5년 전 어획량에 비하면 올해에는 반 토막이 났다.

2009년에는 어획량이 295만kg이었지만 2010년 242만kg, 2011년 225만kg, 지난해 189만kg으로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조업 종료를 한 달 남긴 10월 말 현재까지 올해 전체 어획량은 79만kg에 그치고 있다.

꽃게 어선의 한 선원은 "예년 이맘때면 하루 5t 정도의 꽃게를 잡았는데 요즘은 10분의 1도 잡기 어렵다"며 "어황이 좋지 않아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선원의 푸념을 뒤로하고 연평도 등대공원 입구에 이르자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가 보였다. 1959년 태풍 사라호에 희생된 어부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노래비의 가사가 현재 연평도 상황을 대변하는 듯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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