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그리스 정부, 성소피아박물관 두고 설전

그리스정교 신학교의 재개교 놓고도 갈등

터키와 그리스 정부가 성소피아박물관을 두고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는 등 양국의 종교 갈등이 커지고 있다.

성소피아박물관은 그리스정교의 종주국이던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수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 세운 성당이었으나 오스만제국이 이스탄불을 정복하고 이슬람사원으로 개조했으며 터키 공화국 건국 이후에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앙숙 관계인 양국이 벌인 설전은 뷸렌트 아른츠 터키 부총리가 성소피아박물관을 다시 이슬람사원으로 바꾸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하면서 시작됐다.

아른츠 부총리는 지난 15일 성소피아박물관 근처의 카펫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해 "우리는 지금 슬픈 '아야소피아'를 보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미소 짓는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성소피아는 '성스러운 지혜'란 뜻으로 그리스어로는 '하기아소피아'로 표기되고 터키에서는 '아야소피아'라고 부른다.

아른츠 부총리는 당시 연설에서 "아야소피아 자미"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자미'(cami)는 이슬람사원(모스크)의 터키어다.

지난 9일에는 터키 야당인 민족주의행동당(MHP) 유수프 하라초울루 의원이 성소피아박물관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이슬람사원으로 바꾸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터키에서 성소피아를 이슬람사원으로 바꾸자는 제안은 꾸준히 나왔으나 부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주장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그리스 외교부는 18일 아른츠 부총리의 발언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스는 "터키 관리들이 비잔틴 교회를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자고 요청하는 것은 그리스교인의 종교적 감정을 해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는 시대착오적이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유럽연합(EU)에 가입을 열망하는 국가로서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터키 외교부도 20일 그리스 정부의 성명에 반박하는 성명을 내놨다.

터키는 "종교의 자유와 관련해 그리스로부터 배울 것이 전혀 없다"면서 "아테네는 유럽 각국의 수도 가운데 이슬람교도가 살고 있지만 모스크가 없는 유일한 곳"이라고 밝혔다.

그리스는 동로마제국이 1453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1830년까지 400년 가까이 터키인의 지배를 받아 역사적·민족적 감정이 있다.

양국은 최근 터키에 있는 그리스정교 신학교인 '할키 세미나리'를 다시 개교하는 문제를 두고도 갈등을 빚었다.

이스탄불 인근의 헤이벨리아다 섬(그리스식 명칭은 할키 섬)에 있는 이 신학교는 1844년에 설립됐으나 터키 의회가 1971년 사립 신학교를 불허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이후 문을 닫았다.

지난 2011년 미국 벤 카르딘 상원의원이 폐교 40주년을 맞아 다시 개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재개교 청원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따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지난 9월 말 발표한 소수민족의 권리를 신장하는 내용의 이른바 '민주화 종합개혁안'에 할키 세미나리의 재개교 문제도 다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에르도안 총리는 이 문제는 제외했고 그리스 정부와 정교회 등은 이를 비판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그리스 정부가 터키계 이슬람 신자 15만여명이 사는 트라키아 지역에서 이들을 이슬람교 법전 전문가로 선출하지 않았다며 이 문제를 할키 세미나리의 재개교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다.

한편, 아나돌루통신은 미국 하원 소위원회가 19일 터키 정부에 할키 세미나리를 조건 없이 즉각 재개교하라는 권고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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