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년대 문서정리 작업 때 대량폐기도
- 공무원 인식부족 탓, 문서들 창고방치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11월 21일 (목)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영학 (기록관리전공교수협의회장)
◇ 정관용> 3.1운동 피해자, 관동대지진 피해자 명부 60년 만에 주일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사실,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정부의 이 기록물 관리체계,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어요. 뒤늦게 정부가 과거사기록 전반에 대해서 정부 또 지자체까지 실태조사에 나선다고 하는데 한국기록관리학전공 주임교수협의회 회장 맡고 계십니다. 한국외대 이영학 교수 안녕하세요. 이영학 교수님. 안녕하세요.
◆ 이영학> 네,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이게 그러니까 주일대사관도 그런 게 있었던 지도 몰랐던 거 아닙니까, 사실. 그렇죠?
◆ 이영학>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럼 지금 거기뿐 아니라 정부 부처라든지 지자체라든지 공공기관이라든지 뭐가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게 또 많이 있을까요?
◆ 이영학> 네. 거의 지금 아마 발견된 게 주일한국대사관을 아마 이사하다가.
◇ 정관용> 맞아요, 이삿짐 싸다가.
◆ 이영학> 창고에 묵혀 놓고 있는 거를 찾은 거 아닙니까?
◇ 정관용> 네.
◆ 이영학> 그러니까 아마 공공기관 중에서도 문서 창고에 쌓여 있던 것 중에서 묵혀 있는 것이 있으리라고 얘기합니다. 지금 비교해 보면.
◇ 정관용> 왜 그렇게 자료를 방치하고 있을까요, 공공기관인데?
◆ 이영학> 저는 하여튼 제가 이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 정관용> 네, 첫번째요.
◆ 이영학> 첫째는 우리 한국 현대사 들어오면서 기록관리가 좀... 전통이 좀 단절이 됐어요.
◇ 정관용> 전통이 단절됐다?
◆ 이영학> 네. 조선시대는 기록을 관리하는 나라였는데.
◇ 정관용> 그렇죠.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적 문화유산 아닙니까?
◆ 이영학> 그렇죠. 그런데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이게 조선시대 기록관리 전통이 단절되었고. 해방 이후에 새로운 어떤 기록관리 전통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는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전통 단절이 첫번째고. 두번째는요?
◆ 이영학> 둘째는 저는 공무원들이 인식이 좀 바뀌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본인들은 주로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업무 수행을 하면서 생산한 기록에 대한 어떤 중요성, 그런 것을 간과하고 문서 관리하는 일들을, 이런 것을 귀찮아하고 이렇게 하면서 그런 과정 속에서 기록이 폐기되기도 하고 그런 것에 대한 기록을 잘 관리를 하지 못하는,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공무원의 인식문제고요. 마지막 세번째는요?
◆ 이영학> 세번째 부분에서는 한국사회가 그렇기 때문에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록을 잘 관리하고 활용을 해야 되는데요. 제가 한국이 한 단계 발전하려면 그런 측면에서 어떤 기록관리의 체계를 확립을 해야 된다는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대통령기록 문제도 그렇고. 그래서 이제 그런 기록, 한국사회가 한 단계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이제 대통령기록 같은 경우도 기록을 남겼는데 그걸 잘 관리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는데요. 그것이 앞으로 우리 한국 현대사에서 기록을 잘 남기고 관리하고 이런 것이 하나의 새로운 전통으로 좀 만들어져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좀 못 미치는 문제다라고 여겨집니다.
◇ 정관용> 정치적 이유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또 오랜 기간 군사독재를 겪었으니까, 독재정권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국민적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자료를 남기기보다는 자꾸 없애는 쪽으로 활동하지 않았을까요?
◆ 이영학> 그건 그렇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예를 들면 좌익과 우익 간의 대립이라든지, 심하면 서로 기록을 남기는 게 굉장히 자기들의 어떤 나름대로의 어떤 조직이라든지 자기 일에 대한 어떤 경험 이런 것이 드러나게 되니까 그런 것을 안 남기고 군사독재시절에는 당연히 중요한 일이나 이런 것을 구두로 한다든가.
◇ 정관용> 비밀리에 하니까요.
◆ 이영학> 그렇죠, 그렇게 하고. 그래서 우리 한국 현대사가 중요한 어떤 기록들, 예를 들면 대통령기록도 거의 없지 않습니까, 99년까지. 국무회의 회의록 같은 경우도 굉장히 간소하고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좀 있었습니다.
◇ 정관용> 요즘이야 컴퓨터가 좀 상용화됐으니까 그래도 기록관리가, 컴퓨터 상에서는 쉽게 되는데 옛날에는 또 다 수기로, 직접 쓴 것들이기 때문에 관리도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죠?
◆ 이영학>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록관리와 관련된 법령 같은 것들이 제대로 자리잡은 건 언제부터라고 봐야 됩니까?
◆ 이영학> 법률이 제정된 것은 1999년에 공공기관의기록물관련법률이 되면서 공공기록을 마음대로 폐기하고 이런 것에 대해서 처벌규정이 처음 들어가고, 99년 이후에 공공기관의기록물관련법률이 통과되면서 시작되었고, 2007년에 공공기록물관련법률이 전면 재개정이 되고 대통령기록 관리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하면서 한 단계 정립이 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셈입니다.
◇ 정관용> 21세기 들어와서 시작했군요, 그러니까.
◆ 이영학> 그렇습니다. 그전에는 엄밀하게 얘기하면 99년 이전까지는 그 이전의 기록 갖고 예를 들면 조선시대처럼 조선왕조실록 만들어봐라, 하면 아마 못 만들죠. (웃음) 중요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 정관용> 그렇죠. 그런데 99년 만들어지고 2002년 개정되고 한 지금 현행 법령에 말이죠. 기존의 각 공공기관에 있는, 기존에 보존된 기록을 어떻게 찾아서 어떻게 관리하라 이런 건 없었던가보죠?
◆ 이영학> 그렇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구체적으로 나름대로 그 전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한다든가 그렇게 하는 부분들은... 그렇기 때문에 그 이전에 어떤 역사 기록의 어떤 관리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셈입니다.
◇ 정관용> 그렇죠. 그러니까 법령도 앞으로 생산된 기록은 이렇게 해라, 그걸 규정했을 것이고.
◆ 이영학>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지금 이번에 60년 만에 찾은 것처럼 다 창고에 묵혀 있는 것들 뒤져서 한번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이런 노력은 일체 없었던 것으로 봐야죠, 그렇죠?
◆ 이영학> 네. 그래서 그 부분은 2005년에 기록연구사들이 채용이 되면서 각 공공기관의 기록물 현황을 파악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아주 극히 최근의 일이고. 그러니까 그 이전의 기록들이라든가 이런 것이 공공기관에 어느 정도 있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방치가 되어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죠.
◇ 정관용> 요즘 도서관에서 모든 책도 사실은 다 전자화시키고 이렇게 하는데 이런 것도 좀 기존에 있는 자료들을 다 다시 찾아가지고, 하다못해 사진을 찍는다든지 전자화 시킨다든지 이런 작업들을 일제히 해야 될 텐데 이번에 이제 주일대사관 이전과정에서 이게 나온 다음에 정부가 뒤늦게 그걸 한다고 그럽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되겠죠?
◆ 이영학> 그렇습니다. 다행이라고 얘기할 수 있고요. 그리고 정부가 그렇게 지침을 내리면서 정부가 기록관리 실태조사를 하는 목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전의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정부 차원에서는 대대적인 문서정리 사업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 정관용> 언제요?
◆ 이영학> 1962년, 68년, 75년, 이렇게 해서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문서정리 사업이 있었는데요.
◇ 정관용> 다 박정희 정권 때네요.
◆ 이영학> 그렇습니다. 1962년 5.1 군사쿠데타 이후에 정부의 효율성하고 행정의 간소화, 이런 것을 제시하면서 각 행정부처의 캐비넷에 있는 자료들, 그걸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왜 가지고 있느냐. 그래서 그 시기까지 가지고 있던 어떤 자료나 혹은 그 중에 일제시대의 기록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많이 폐기된 적이 있습니다.
◇ 정관용> 이건 일제 조사해서 보존하는 게 아니라 폐기하려고 했던 거군요?
◆ 이영학> 그 당시에는 행정의 간소화하고 정부의 효율성, 이런 걸 강조했으니까.
◇ 정관용> 거꾸로 갔네요.
◆ 이영학> 그 시기에는 기록에 대한 어떤 인식이라든지 이런 것이 좀 미비했기 때문에 특히 그런 측면이 있는데 그래서 이번에 그렇게 나섰으니까 공공기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일제시대 이전의 자료를 전수조사한다는 명확한 지침을 시달하고. 그것을 이르면, 예를 들면 포상을 한다든지 이런 식의 일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많이 조사를 했었는데요. 이십 몇 년 동안. 제가 한국 근대 경제사하고 기록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20 몇 년 동안 대한제국주의의 토지문서, 일제시대의 토지문서, 수리조합문서 이런 거를 찾으러 다닌 적이 있는데. 1980년대 중반에는 충청남도 한 군에 일제시기에 수리조합문서 수백 권이 있어서 그걸 발견해서 복사한 적이 있고 2000년대에는 경상남도 지역에서 일제가 1910년부터 18년까지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면서 작성했던 귀중한 역사기록들입니다. 과세지견취도나 토지조사, 토지분쟁문서 이런 게 10여 종의 수백 권의 일련의 문서를 발견해서.
◇ 정관용> 교수님, 그때 거의 심봤다 기분이었겠네요.
◆ 이영학>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웃음)
◆ 이영학> 현재도 그걸 가지고 공공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나온 김에 저도 고백하자면 저도 대학원에서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연구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대통령 청와대 비서실에 중화학공업 추진단이라고 있었어요. 거기 회의록이 아무 데도 없더라고요. 제가 어디에서 찾았느냐 하면 거기 중화학공업 추진단의 단장을 맡았던 분이 어느 기업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분 개인 캐비넷에 있더라고요. (웃음) 저도 그거 찾을 때 심봤다 기분이 들었고, 그걸 가지고 박사논문을 쓴 분도 여러 사람 생겼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제 알 것 같고요. 아무튼 이제 폐기용이 아니라 전수조사다. 이번에 제대로 한번 좀 했으면 좋겠네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이영학> 네.
◇ 정관용> 한국기록관리학전공 주임교수협의회 회장이십니다. 한국외대 이영학 교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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