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대형 유통채널 앞에 '규제 전봇대'가 꽂혔다. 지방자치단체별 조례 제정을 통해 월 2회 이내의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이뤄진 것이다. 규제 전봇대는 더 깊숙이 박혔다. 올 1월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 개정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제한 시간이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에서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로 바뀌었다. '의무휴업일 월 3일 이내' 조항도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 월 2회'로 수정됐다.
이 규제는 대규모ㆍ준대규모 점포에 적용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규모 점포는 총 매장면적이 3000㎡(약 909평) 이상인 곳이다. 준대규모 점포는 대규모 점포를 갖고 있는 회사나 그 계열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쉽게 말해 대형마트ㆍ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대상이다. 이마트(이마트에브리데이)ㆍ롯데마트(롯데슈퍼)ㆍ홈플러스(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형 유통채널의 몸집이 커졌다. 당연히 중소유통업체들의 생존은 위협받았다. 특히 2009년 이후 대형마트의 아들격인 'SSM'이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까지 진출하면서 골목상권 침해논란에 불이 붙었다.
이런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18대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다. 경제민주화 논쟁이 본격화하면서 골목상권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대형 유통채널의 '외형 키우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앞서 언급한 각종 규제가 시작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규제 효과는 있을까. 대형유통채널을 규제했다면 전통시장과 영세상인의 숨통은 트였어야 옳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시장당 연간 평균매출은 2008년 178억원에서 2012년 149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대형마트 매출은 같은 기간 39% 늘었다. 이마트ㆍ롯데마트ㆍ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1곳의 평균매출은 760억원으로 전통시장(163억원)의 4.7배가 됐다.
각종 규제에도 대형 유통채널의 매출이 감소하지 않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언급했듯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 문제는 평일에 의무휴업을 하는 곳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는 매월 1일과 15일이 휴무일이다. 수요일을 휴무일로 정한 곳도 있다. 평일에 대형 마트가 휴무를 하면 규제 효과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외벌이든 맞벌이든 생필품은 대부분 주말에 구입하기 때문이다. 의무휴업일이 일관적이지 않은 이유는 법과 조례가 충돌해서다. 올 7월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규모ㆍ준대규모 점포의 의무휴업일을 매월 이틀로 정하고 있지만 휴무일은 지자체 조례를 따라야 한다. 이에 따라 휴무일을 평일로 하기 위해 로비를 시도하는 대형유통채널도 있다.
박완주 민주당 의원은 "전통시장을 살리자고 일부로 5일장 기간에 맞춰 휴무를 정하는 지자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며 "대전 지역의 경우 홈플러스가 지역 상인 단체에 뒷돈을 제안하고 휴무일의 평일 지정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대형 유통채널이 규제의 틈새를 파고들어 '꼼수'를 펼치는 것도 문제다. 변종 SSM으로 불리는 '상품공급점'이 위세를 떨친 건 단적인 사례다.
문제는 상품공급점으로부터 물건을 받는 슈퍼마켓이 해당 대형 유통채널의 로고ㆍ상호를 사용하거나 유니폼을 착용한다는 것이다. 대형 유통채널이 골목상권을 파고들어 변종 가맹사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품공급점 때문에 중도매 상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거다. 기존 중도매상인들이 물품을 공급할 곳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브랜드력이 턱없이 부족한 골목슈퍼마켓이 받는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게 뻔하다. 중소상인들이 상품공급점을 규제대상에 포함해 줄 것으로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형 유통채널이 부리는 꼼수는 또 있다. '시장상인 매수' 전략이다. 10월 16일 중소기업청 국정감사에 참석한 허인철 이마트 대표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상생자금 명목의 점포 개설비로 점포당 5억~10억원을 사용했다." 여기서 말하는 점포 개설비는 해당 지역 상인회와 단체 등에 건넨 돈이다.
규제 틈새 파고들어 꼼수 부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규제'를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2006년 3월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신규 제정됐다. 여기에는 2010년 12월, 2013년 3월 두차례 개정을 거친 '사업조정제도'가 포함돼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 정부가 중소기업의 심각한 경영상 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대기업의 사업인수ㆍ개시ㆍ확장을 유예하거나 사업을 축소해 대ㆍ중소기업간 자율합의를 할 수 있도록 중재할 수 있다…." 출점을 위해선 지역 상인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형 유통채널들이 사업조정제도로 발생 가능한 문제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돈을 뿌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규제가 '유명무실'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통규제가 소비자들의 실익 관점에서 정말 긍정적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소상공인을 살리겠다고 제정된 유통규제로 애먼 소비자들의 피해로 전가될 수 있어서다. 김포 신도시 장기동 KCC스위첸에 거주한다는 송혜미씨는 이렇게 말했다.
"근처에 재래시장이 없는데 왜 주변 대형마트와 SSM을 쉬게 하는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가야 나오는 5일장이 전부인데 과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대형마트와 SSM이 문을 닫으면 하는 수없이 편의점에서 생수 같이 꼭 필요한 것을 구매해 돈이 아까울 때가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 연구실 부연구위원은 "규제 시행 후 1년이 지났지만 전통시장과 영세상인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분석은 없다"며 "각종 규제로 대형 유통채널이 신규채용 계획을 철회하는 등 고용창출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세상인이 대형마트를 상대로 경쟁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지금 규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중요한 건 방법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규제보다 중요한 건 재래시장,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키우는 거다. 이들의 콘텐트를 강화하고 자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쏟아부은 예산도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 10년 가까이 수천억원을 투입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의 혈세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현실성 없는 규제가 발목 잡아
국회에 계류 중인 유통규제 입법안들이 통과된다고 소상공인들이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다. 규제에는 언제나 틈새가 존재하게 마련이고 기업들은 이를 가볍게 돌파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다. 대형 유통채널과 영세상인이 함께 숨 쉴 수 있는 시장을 만들려면 강자가 양보를 해야 한다. 대형 유통채널이 먼저 선을 긋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다음은 소상공인들의 몫이다. 위기탈출을 위해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고, 소비자 지향적인 마인드도 갖춰야 한다. 상인 특유의 고집으로 버틸 수 있는 시대는 갔다. 규제는 시장을 살리지 못한다. 규제보다 중요한 건 활력이다. 활력이 시장에 감돌기 위해선 정부 아닌 시장 참여자들이 화합해야 한다. 그렇다. 답은 상생이다. 규제보다 무서운 건 상생의 힘이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