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곤충 전문가를 맹수사에?…예고된 '호환'

근무 수칙 준수도, 관람객 대피 매뉴얼도 없었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호랑이에게 물린 사육사는 26년 동안 곤충관에서 근무한 곤충전문가였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은 맹수사에서 갑작스레 근무하다 변을 당했다고 서울대공원이 인정했다.

여기에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수칙도 지켜지지 않았고, 관람객 대피 매뉴얼도 없는 등 이번 사건은 '총체적 인재(人災)'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공원은 25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날 발생한 호랑이 탈출 사고의 경위와 향후 대책을 발표했다.

대공원에 따르면, 3년생 시베리아 수컷 호랑이 로스토프에게 공격당해 의식 불명에 빠진 사육사 심모(52) 씨는 곤충 분야 전문가로, 과거에 근무해본 적이 없는 맹수사에서 근무하다 변을 당했다.

곤충학 박사학위를 가진 심 씨는 지난 1987년 서울시에 입사해 지난해 말까지 곤충관에서 근무하다 지난 1월 1일부터 맹수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심 씨는 본인은 맹수사로 옮기기 보다는 원래 근무했던 곤충관에 남아 근무하기를 원했다고 대공원은 설명했다.

이런 인사 이동에 대해 안영노 서울대공원장은 "심 사육사는 곤충관에서 근무하면서 세심하게 관리를 잘해, 호랑이사에서도 세심한 관리가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며 인사 이유를 밝혔다.


안 공원장은 "27년 동안 동물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동물원 윤곽을 다 알고 있어, 어느 동물사에 근무하더라도 몇 개월 트레이닝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동물관리를 잘할 수 있는 인력"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전반적으로 각 동물사에 대해 선호도가 달라 모두가 선호하는 곳으로 보낼 수 없다"면서 "올해초 심 씨를 포함해 4명의 근무지를 이동시켰다"고 말했다.

공원장은 '맹수사 전문 직무 교육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선임 근무자에게 구두로 교육을 받지만 세부적인 전문 교육과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동물원 측은 사고 당시에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나마 이 원칙마저 모호한 구석이 많았다.

노정래 동물원장은 "사고 당시 다른 한 직원은 100m 떨어진 퓨마사로 들렀다가 여우사로 올라오는 길이었다"며 "반드시 두 사람이 같이 있으라는 원칙은 아니지만 눈으로 보이거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규칙은 있다"고 설명했다.

노 동물원장은 "호랑이에 관한 매뉴얼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포유류, 조류 등으로만 구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정노 서울대공원장은 이에 대해 "동물사마다 특성에 맞게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울대공원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시설 보완과 직원 안전 교육 강화 등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그동안 별다른 원칙이 없었던 관람객 대피 통제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공원측은 일단 사고가 일어난 여우사의 펜스 높이를 1.5m에서 5m로 높이고, 맹수류 사육 방사장마다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번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관람객 대피 통제 매뉴얼을 만들어, 동물별 관람객 대피 동선 및 구역벽 대피장소 지정 등을 마련한다.

또 사육사를 공격한 호랑이는 해외 사례를 검토한 뒤 조치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한편 호랑이에게 목을 물려 경추 골절 등 중상을 입은 사육사 심 씨는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사고 24시간이 지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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