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민주당사에도 SSM…영등포 상인들 '울상'

유통발전법상 입점 규제는 빠져나가 당국도 손 못써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재래시장인 조광시장 길 건너편에 옛 민주당사에 유사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이대희 기자)


서울 영등포 재래시장 안 옛 민주당사 건물에 유사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입점하기로 해 시장 상인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상인들은 구청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당국에서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 코 앞에 SSM 들어서지만 손 쓸 수 없는 재래시장 상인들

38년 전 처음 문을 연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조광시장은 청과물 도매상 150여 곳이 모여 있는 전통시장이다.

최근 이곳 상인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근심만 가득하다. 왕복 4차선 도로 건너편, 옛 민주당사 건물 1층에서 벌어지는 공사 때문이다.

이곳은 한 중소유통업체가 최근 법인을 설립해 만든 A 마트의 공사 현장으로, 내년 1월 개점을 위해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이 마트의 거리가 시장과 불과 10m 안팎이어서 상인들은 필사적이다.

조광시장과 함께 청과상을 해온 나주상회 전영희(68·여) 씨는 "가뜩이나 근처에 대형 마트가 있는데 바로 코 앞에 마트가 들어와 다 죽게 생겼다"면서 "이제는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청과 이강임(63·여) 씨는 "도매 특성상 가게 앞에 화물차를 대고 물건을 내린다"면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정차를 평일에 허용하지만 마트가 들어서면 교통량이 많아져 이 마저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조광시장 상인 130여 명은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청에 해당 슈퍼마켓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무용지물일 뿐이다.


SSM 규제를 위해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는 연면적 3000㎡ 이상, 대기업 지분이 51% 이상인 마트에 대해서만 전통시장 반경 1km 내에서 출점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대기업 소유도 아니고, 규모도 2200㎡에 불과해 규제 대상이 아니란 것이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해당 마트는 중소유통업체에서 법인을 설립해 개점이 진행 중"이라면서 "면적도 규제 대상 이하이기 때문에 상인들이 반발해도 제재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광시장 상인 130여 명이 서울 영등포구청에 제출한 청원서와 반대서명.


◈ "새로운 상생 상생 모델" VS "일단 입점 뒤 상권 삼키려는 속셈"

A 마트 측은 자신들의 입점으로 전통시장이 위축되기는커녕 소비자가 더 많이 몰려 시장 상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A 마트 관계자는 "아직 기획 단계라 모든 전략을 밝힐 수는 없다"면서 "우리 마트가 입점하면서 오히려 소비자들이 더 몰려 도매만 전문적으로 했던 조광시장 상인들의 매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 마트 안에 일부 도매상들을 입점시키는 계획 등 상생의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굴러온 돌이 아니라 '인절미'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이런 '상생안'을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용남상회를 운영하는 강광회(60) 씨는 "일단 입점한 뒤 점포를 확장해 상권을 집어 삼키거나 대기업이 업체를 인수하는 등 대형마트 편법 입점 우려가 크다"며 근심을 거두지 않았다.

실제로 이와 같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는 한 건축회사가 현 롯데슈퍼 자리에 2만9300㎡ 규모의 대형마트 건축허가를 구청에 신청했으나 불허처분이 내려지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광주지법은 지난 14일 대형마트 건출불허가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또 지난 3월 광주 남구의 한 중소기업은 대형마트를 입점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중소형 마트를 개점했지만 기습적으로 간판을 '이마트에브리데이'로 바꿔 상인들의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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