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뒷조사 '원세훈 측근' 배후에 누가 있나

가족등록부·학적부 등 여러 공기관 동시 동원…권력 개입 의심

채동욱 전 검찰총장. (송은석 기자/자료사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과 관련해, 불법적인 정보 접근이 여러 공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정황이 나오면서 그 뒷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월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에 대해 보도하면서 가족관계등록부, 출입국 기록, 학적부, 혈액형, 주소이력 및 등록된 차량 정보 등 다양한 개인정보를 근거로 내세워 정권 차원의 사생활 캐기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우선, 채 전 총장의 아들로 지목된 채모 군이 모자(母子) 가족이라는 사실의 근거가 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유출자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최측근인 조이제 서초구 행정지원국장이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조 국장은 구청에서 접근할 수 있는 혼외아들의 어머니로 지목된 임모 여인의 주소 이력과 차량 정보도 캐냈을 공산이 크다.

조 국장은 경북 포항출신으로 영주출신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서울시에서 만나 원 전 원장이 서울시 부시장시절 때 비서실에서 일했다.


조 국장은 또 지난 2008년 원 전 원장이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장관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1년 뒤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임명되자 다시 비서로 전출됐다. 이때 조 국장은 5급에서 4급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조 국장은 2010년도에 지금의 직책을 맡으며 서초구로 오게 됐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각종 이권에 개입해 논란을 빚은 '영포회' 소속 회원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연 탓인지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원 전 원장과 조 국장과의 관계를 '전두환-장세동' 관계로 비교하면 적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국장은 원 전 원장이 두 자녀를 결혼시킬 때 '허드렛일'을 모두 처리하는 집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6월 14일 서초구청 행정 전산망에 접속해 채 군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당시 전산망에 접근한 직원을 불러 상부의 지시여부 등에 대해 진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국장이 원 전 원장의 측근인데다가 국정원에 몸담은 경력 등을 이유로 국정원이 배후라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국정원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궁지에 몰린 정황도 이를 뒷받침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채 전 총장을 아버지로 기입했다는 채 군의 학적부는 해당 학교내부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은 학교 외부에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에 접속한 기록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지난달 문제의 초등학교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교육청은 나이스에 접속해 열람한 교사 23명에 대해 조사했지만 유출자를 찾아내진 못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사들이 학생정보를 유출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해도 감사는 강제성이 없어 추가로 더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채 군의 미국 출국 사실은 출입국 기록에 의해 확인이 가능한데 이는 국정원, 경찰, 구청쪽이 동원됐을 가능성이 크다. 출입국 기록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관리하지만 조회가 가능한 단말기는 검찰, 경찰, 국정원뿐 아니라 기초단체 등에도 배치돼 있다.

이 가운데 경찰 동원과 관련해 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지난달 초 국회 법사위에서 국정원 서천호 제2차장을 지목했다.

신 의원은 당시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경찰 출신의 서천호 국정원 제2차장에게 채 전 총장의 사찰 자료를 요청한 것을 확인했다"며 "그러나 서 차장은 '국정원이 직접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고, 그래서 (곽 전 수석은) 경찰 정보라인을 통해 사생활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서 차장은 경찰 출신 정보통 인사로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 채 전 총장의 사생활 정보를 취득했을 것으로 신 의원은 보고 있다.

검찰은 채 전 총장 뒷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개입 의혹을 제기한 언론보도에 대해 "나중에 사실이 다르게 나오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며 선을 긋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인사를 앞두고 있는데다 자칫 배후로 국정원 등 국가기관 개입이 확인될 경우 사건의 파장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수사 의지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조직이 휘청거릴 정도로 내홍을 겪은 검찰이 다시 국정원에 '메스'를 대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정권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채 전 총장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로까지 수사를 확대하긴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검찰 수사와 상관없이 채 전 총장 의혹과 관련한 개인 정보가 여러 기관으로부터 일사불란하게 수집됐고, 채 전 총장의 낙마에 결정타가 된 만큼 이 과정에서 막강한 권력이 작용했다는 추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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