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아시아 전문가팀은 "방공식별구역 문제의 중요성을 중국과 일본의 '고양이와 쥐' 게임 정도로 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이 문제는 중국 새 지도부가 역내 안보 도전에 대해 새 틀을 짜고 있다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CSIS는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최근 끝난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 전회)에서 중국 지도부가 역내 갈등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신호라고도 평가했다.
한편에서는 중국이 이제 과거 덩샤오핑(鄧小平)이 역설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키운다) 정책에서 벗어나는 등 외교 목표와 전략을 재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위안징둥(袁勁東) 시드니대 교수는 중국이 이제 자국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면서 중국 새 지도부는 지금이 20년 이상 계속된 저자세 도광양회 외교정책을 끝낼 때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저우(廣州) 중산(中山)대의 데이비드 추이 교수는 "이번 조치는 국가 안보와 영토 보존 문제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긴급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도부의 인식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라며 미국의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에 대한 대응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 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최신호에서 방공식별구역 선포 뒤에는 중국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동중국해 중간선에 있는 유전과 가스전을 넘어 제1열도선(규슈<九州>∼오키나와∼대만) 출해구(出海口) 돌파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고 해석했다.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중국 해군이 제1열도선을 넘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미야코해협을 일본의 방해 없이 순조롭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아주주간은 또 소식통을 인용, 중국이 오래전부터 방공식별구역 설정 계획을 가다듬어왔으며 최종 결정은 18차 당 대회 이후 내려졌다고 전했다.
중국 국방부는 이미 몇 년 전 중앙군사위원회에 되도록 빨리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당시 중국 지도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8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시 주석은 중·일 간의 갈등이 그동안의 자원확보 경쟁에서 한 단계 진화한 전략경쟁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고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당시 이들 소식은 밖으로 누설되지 않았고 3중 전회 이후에야 발표됐다고 잡지는 소개했다.
이 잡지는 중국이 동중국해에 이어 서해(황해)와 남중국해에도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중국군 전투기 등의 지역 내 활동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한편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과 관련해 중국에서 내부 비판론도 나오고 있다.
미·중 관계 전문가인 중국 칭화(淸華)대 국제문제연구소 쑨저(孫哲) 교수는 방공식별구역 선포 직후 주변국 사이에서 중국이 '공적'(公敵)이 된 것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사전 준비와 상황 예측이 부족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홍콩 명보(明報) 등 중화권 매체들이 전했다.
쑨 교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외교상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대표적으로 한국과 대만을 자극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어도(중국명 쑤옌자오·蘇岩礁)가 중국이 새로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최근 중국판 NSC(국가안전보장회의)로 불리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창설키로 한 것과 관련해 이 위원회가 향후 안보 관련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과거 방식을 답습한다면 이번 방공식별구역 사태와 같은 도전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