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이네 신촌하숙집 거실 TV를 채우는 뉴스들은 그야말로 메가톤급이다. 일년에 한 번 터지기도 힘든 대형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던 해가 1994년이요, 나정이가 2학년이 된 1995년이다.
◈ 김일성 죽고 성수대교 무너진 1994
1994년은 '응답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많았던 해다. 49년간 북한에선 '절대 신'으로, 남한에선 '절대 악'으로 여겨져온 김일성이 그해 7월 8일 숨졌다.
전 세계 해외토픽에 오르기도 했던 성수대교 붕괴 사건도 그 해 10월 21일 일어났다. 오전 7시 40분, 다리 중간이 그대로 수몰되면서 출근과 등교에 한창이던 32명이 숨졌고 17명이 다쳤다.
인육을 먹으며 연쇄 살인을 벌인 '지존파 사건'도 길이길이 회자되는 '사건의 지존'이다. 1년여에 걸쳐 5명을 연쇄 살인한 일당 7명은 납치, 감금, 윤간, 토막살인 등 '막장'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해 5월엔 거액의 재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사건, 9월엔 훔친 택시로 여성들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한 온보현 사건도 터졌다.
지금은 '종북'으로 대체된 '주사파' 논쟁도 당시 대학가를 휩쓸었다. 박홍 서강대 총장은 그해 7월 18일 청와대 주최로 열린 대학총장 오찬 모임에서 "주사파 뒤에 사노맹이, 그 뒤에 북한의 사노청과 김정일이 있다"고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화끈한 사건사고가 많아서였을까. 드라마에서도 소개됐듯, 그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대구와 밀양 39.4도, 서울 38.4도까지 수은주가 치솟으면서 1904년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찜통 더위가 두 달간 전국을 달궜다.
◈ 삼풍 무너지고 대구 지하철 폭발한 1995
드라마 속 나정이가 눈물을 흘리며 처음으로 칠봉이를 껴안은 날은 1995년 6월 29일이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502명이 숨지고 937명이 다쳤다. 근 두 달간 이어진 특집 생방송을 통해 기적적으로 생환하는 구조자들을 지켜보며 온 국민도 울었다.
무너진 건 삼풍백화점만은 아니었다. 광복 50주년이던 그해 8월 15일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이던 구 조선총독부 건물도 해체에 들어갔다.
앞서 4월 28일엔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공사장에서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등교하던 초·중학생을 비롯해 101명이 숨지고 117명이 다쳤다. 당시 숨진 이들이 가족들에게 남긴 마지막 문자메시지는 지금도 인터넷 등에 회자되며 심금을 울리고 있다.
1995년은 또 오염의 해였다. 7월 23일 시프린스호를 시작으로 9월 22일엔 제1유일호, 11월 17일엔 호남사파이어호까지 대형유조선이 잇따라 남해안에서 좌초해 침몰했다. 원유가 대량 유출되면서 어패류가 집단 폐사하는 등 해양생태계가 크게 파괴됐다.
정치적으로도 다사다난하던 해였다. 1992년 14대 대선 패배 직후 정계를 은퇴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7월 18일 복귀한 뒤 9월 5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은 11월 16일 거액 수뢰 혐의로, 12월 3일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사태와 5·17군사반란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당시 김영삼 문민정부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 쌀 15만 톤을 북한에 지원했고, 한국은 그해 11월 9일 임기 2년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4대 지방선거가 동시 실시되는 등 지방자치시대도 본격 개막했다.
'응답하라 1994'를 볼 수 있게 된 것도 따지고보면 1995년에서 비롯됐다. 그해 3월 1일을 기점으로 케이블TV와 4대 도시 지역민방이 잇따라 출범하면서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