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당초 수도 키예프 시내 '독립광장'에서 정오부터 열릴 예정이던 집회는 참가자들이 지속적으로 몰려들면서 오후 2시께부터 시작됐다.
'백만명 가두행진'으로 이름 붙여진 이날 집회 참가자 수는 경찰과 주최 측 추산이 크게 엇갈렸다. 경찰은 5만명 정도가 모였다고 밝혔으나 주최 측은 50만~100만 명이 참가해 광장과 인근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부터 키예프 시내 지하철은 집회장으로 향하는 시민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 국기와 EU 깃발, 각 정당 깃발 등을 들고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집회는 성직자들의 구국 기원 기도로 시작됐다. 곧이어 주요 야당 지도자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EU와의 협력 협정 체결을 중단한 정부 결정을 비난하고 내각 총사퇴와 조기 총선 및 대선 실시 등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지난달 30일 야권의 대규모 시위를 강경 진압한 책임자 처벌과 당시 시위에서 체포된 야권 인사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는 주장도 울려 퍼졌다.
권투 세계챔피언 출신의 제2야당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 당수 비탈리 클리치코는 연설에서 "지난달 말 시위에서 대학생들을 폭행한 자들이 처벌받아야 하며 니콜라이 아자로프 총리가 이끄는 수치스런 정부는 사라져야 한다"면서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는 한편 조기 대선과 총선을 촉구했다.
최대 야당인 '바티키프쉬나'(조국당) 소속 의원 세르게이 파쉰스키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이틀 내에 내각을 해산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키예프 교외에 있는 대통령 관저를 점거하겠다고 경고했다.
바티키프쉬나 원대대표 아르세니 야체뉵은 이날부터 대통령 집무실과 정부 청사 등 관청 건물이 밀집한 구역 전체를 완전히 봉쇄해 정부 업무를 마비시킬 것을 시위대에 제안했다.
실제로 시위대 일부는 이 제안에 따라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쪽으로 행진했으나 경찰 저지선에 막혀 더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직권 남용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는 자신의 딸이 대신 읽은 호소문을 통해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말고 정부와 협상 테이블에 앉지 말라"고 호소하면서 "협상은 조기 대선과 총선이 수용된 뒤에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누코비치는 EU와의 협력 협정 서명을 포기한 때부터 합법성을 잃었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야누코비치를 즉각 대통령직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우크라이나 경찰은 이날 약 5만명의 병력을 집회장 주변에 배치해 경계를 펼쳤다.
대통령 집무실과 정부 청사로 향하는 길목은 경찰 버스들로 전면 차단했다. 버스 주변에는 완전 무장한 경찰 병력이 집중 배치됐다.
시위 주최 측이 평화적 시위를 강조하고 경찰도 합법적 시위는 저지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양측 간에 별다른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시위대 내부의 강경 세력이 과격한 행동에 나서면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으며 시위 주최측은 오히려 정부쪽에서 가짜 '도발자'들을 심어 이들의 과격 행동을 핑계삼아 강경 진압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긴장이 가시지 않고 있다.
키예프와 지방 주요 도시들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포함한 EU와의 포괄적 협력 협정 체결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지난달 21일부터 정부 결정에 항의하는 야권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30만명이 시위를 벌이면서 경찰과 충돌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키예프 시내 마린스키 공원에서는 여당인 '지역당' 소속 회원 등 수천명이 모여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정부 집회를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