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장성택 숙청서 부각되는 상징인물 '태성할머니'

유일 지배체제 강조해 민심 다잡기 의도 해석

북한이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숙청하면서 노동당 역사에서 '최고지도자만을 믿고 따른 상징인물'로 내세우는 '태성할머니'를 부각해 눈길을 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장성택 숙청을 언론에 공개한 이튿날인 10일 3개의 지면에서 태성할머니를 언급했다.

특히 신문은 1면 사설에서 "우리는 수령님(김일성)만을 믿고 따른다고 말씀 올린 태성할머니의 숭고한 정신세계가 지금 천만 군민의 가슴마다 차 넘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3면에 실은 '노동계급의 당의 존재방식'이란 제목의 글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성할머니를 자주 회고하곤 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20일에도 '우리 당 역사에 새겨진 잊지 못할 이야기'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 주석이 "태성할머니가 가장 어려운 때에 큰 힘을 주었다"고 추억했다고 소개했다.

노동신문이 태성할머니 이야기를 실었던 지난달 말은 시기적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장성택의 심복들을 처형하고 장성택의 거취 문제를 고민하던 시점과 일치한다.

북한이 장성택 숙청 과정에서 부각시키는 태성할머니는 노동당 역사에서 '반당반혁명종파분자' 숙청사건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50년대 중반 김 주석은 대내적으로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다. 당시 스탈린의 뒤를 이어 1955년 집권한 흐루시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수정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북한에도 이를 강요해 김 주석을 불안하게 했다.

특히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에 힘입어 북한 노동당 내 거물급이었던 김두봉, 최창익, 박창옥 등 '연안파'와 '소련파'는 김일성 1인 지배체제를 거부하고 김 주석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위기를 맞던 어느 날 김 주석은 남포시 강서구역 태성리 일대의 투표소로 가는 길에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그 할머니는 김 주석에게 "우리가 이기지 종파놈들이 이기겠느냐, 우리는 수상님(김일성)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김 주석은 이름도 모르는 평범한 이 할머니의 말에 큰 힘을 얻고 돌아가 자신에게 도전했던 종파분자들를 숙청했는데, 그 사건이 바로 북한에서 유명한 '1956년 8월 종파사건'이다.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태성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이 세상 끝까지'와 '태성할머니'가 제작되기도 했다.

북한이 40여 년 만에 '종파분자'라는 죄목을 다시 꺼내 들어 장성택을 숙청하면서 태성할머니를 부각하는 것은 장성택의 숙청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민심을 다잡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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