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진 국민통합…깊어진 이념갈등

[2012년 12월에 머물러 있는 대한민국] '대통합'은 폐기된 구호인가?

광화문 대로변에 전시되고 있는 보수단체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규탄 사진
12월 19일은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대선 결과 박근혜정부가 출범했지만 우리사회는 민주헌정이 자리를 잡은 1988년 이래 유례없는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요즘 대학가에 유행하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는 한 단면이다. CBS는 대선 1주년을 맞아 아직도 대선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짚어 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①파면 덮고…정보기관에 만신창이 된 대한민국의 1년
②멀어진 국민통합…깊어진 이념갈등
③대선 최대 이슈 경제민주화, 복지…빛좋은 개살구였나?
④ 박근혜 스타~일, 유신회귀? 창조리더십?

인터넷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1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나라 전체가 대선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가운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문재인 후보도 마찬가지였지만 박근혜 후보는 대통합을 강조했다. 가는 곳마다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박 후보는 대통합 수단으로 인사대탕평을 내세웠다.12월 4일 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인사가 공정해야 한다. 인사대탕평을 실시하고 어느 지역에 살든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대통합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는 대선 승리가 확정된 뒤에도 확고해 보였다. 대통령 당선인으로 신분이 바뀐 12월 20일 대국민 인사에서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고 밝혀 기대를 모았다.

그후 1년의 시간이 지나 2013년 12월에 이르기까지 박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국민통합', '대통합'이라는 단어를 가끔 언급하기는 했지만 '창조경제'나 '경제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의 단어에 비해서는 발언 횟수가 현저히 적었다. 이는 외부에 공개되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검색해보면 금방 확인된다.

문제는 국민통합이나 대통합을 위한 노력조차 시들해졌다는 데 있다. 박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의 유력한 수단으로 제시했던 인사대탕평은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취임을 전후한 '나홀로 인사'로 쓴맛을 본 박 대통령의 인사는 결국 지역편중 인사 심화로 귀결됐다.

국무총리, 비서실장, 검찰총장, 감사원장 등 권력의 핵심 실세들이 PK(부산·경남)인맥으로 채워졌고, 17개 정부 부처 가운데 호남출신이 수장인 곳은 고용노동부가 유일하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외쳤으면서도 여성 장관은 단 두 명에 그치고 있다.

이러다보니 국민들은 한때 개선되던 지역갈등이 다시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10일 국민대통합위원회가 개최한 '국민대통합 공감토론회'에서 발표된 전북대 설동훈 교수(사회학과)의 발제에 따르면 영호남 갈등은 최근 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호남 갈등이 심각하다는 대답은 2005년에 61.7%였다가 2006년에 58.1%로 약간 떨어졌지만 2013년에는 63.7%로 다시 높아졌다.

설 교수는 CBS와의 통화에서 "대부분 대선때 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았지만 호남 사람들은 박 대통령에게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그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선거에서 표를 주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려를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삐걱대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 1년은 한국 사회가 이념적으로 더욱 확연하게 갈라진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집권세력과 보수층의 공세가 돋보인다.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이 NLL포기 발언을 했다는 'NLL 공세'는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시비를 덮고,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확대되는 것을 막는 방패막이로 활용됐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국가내란 혐의도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피의사실이 줄줄이 유출되고, 이를 바탕으로 마녀사냥식의 종북몰이가 판을 쳤다. 국회에서는 이 의원 제명안이 제출됐고, 정부 이름으로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이는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문제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와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박 대통령의 입장과 뚜렷이 대비되는 모습이다.

물론 시대변화를 읽지 못한 채 친북적 행태를 보이면서 결정적 시기마다 진보세력 탄압의 빌미를 주고 있는 우리 사회 일부세력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여권의 이념공세는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종교인에게 종북의 굴레를 씌우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의 발언은 문맥(Context)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 자체(Text)만으로 종교적 신념과 양심마저 무시하는 야만성을 보여줬다.

경실련 고계현 사무총장은 "지난 1년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이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정치적 비판세력에 대해 포용과 수용의 전략을 취한 게 아니라, 종북좌파 논리에 따라 정치적 비판세력마저 낙인찍는 행위들을 펼치다보니 반대와 지지가 갈라지는 것들이 좀더 노골화 됐다"고 평가했다.

고 총장의 진단은 노동문제나 지역내 갈등유발 요인에 대한 정부여당의 태도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한 것이나 공무원 노조 설립신고를 반려한 것 등이 단적인 예다.

반면 취임 초기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 사이에서 줄타기를 거듭하던 경제정책은 시간이 흐르면서 친자본으로 방향을 확실히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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