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스타~일…안팎이 달랐던 ‘소통과 원칙’

12월 19일은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대선 결과 박근혜정부가 출범했지만 우리사회는 민주헌정이 자리를 잡은 1988년 이래 유례없는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요즘 대학가에 유행하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는 한 단면이다. CBS는 대선 1주년을 맞아 아직도 대선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짚어 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①파면 덮고…정보기관에 만신창이 된 대한민국의 1년
②고착된 이념 논쟁, 멀어진 국민통합
③대선 최대 이슈 경제민주화, 복지…빛좋은 개살구였나?
④박근혜 스타~일, 안팎이 달랐던 ‘소통과 원칙’

“저는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서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얻겠습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어내고 신뢰의 자본을 쌓겠습니다”

시정연설하는 박근혜 대통령. (송은석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취임사에서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키워드로 ‘신뢰’를 들었다. 때문에 신뢰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소통과 원칙’은 지난 10개월간 박 대통령을 따라 다녔다. 박근혜 스타일에 대한 평가에서도 이 두 요소는 가장 중요한 잣대로 작용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8일 대선 1주년을 앞두고 “국정운영의 중심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이동시킨 패러다임 변화”라고 박근혜정부 10개월을 평가하면서 “비정상의 정상화”의 원동력으로 ‘소통과 원칙’을 꼽았다.

그러나 ‘소통과 원칙’의 적용 방식에 있어서 나라 안과 밖이 달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 ‘외국어·한복’과 ‘개성공단’

외교무대와 대북 관계에서 박 대통령의 ‘소통과 원칙’은 빛을 발했다. 박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유럽, 동남아 등 다섯 차례의 해외순방과 31명의 외국 국가원수와의 단독회담에서 상대국가와의 소통을 최우선에 뒀다.

철저한 사전준비와 방문국과의 인연이란 바탕 위에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연설과 한복 패션의 우아함으로 방문국 국민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중국의 경우 2005년 방한 때 박 대통령과 만났던 시진핑 주석은 “옛 친구를 만난 것 같다”며 파격적인 예우를 했고 중국 포털에서는 검색어 1위에 박 대통령이 오르기도 했다.

성과도 컸다. 한미동맹 재확인과 한중 신뢰 회복으로 대표되는 G2방문에서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긴밀한 공조에 뜻을 모았고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다.

청와대 관계자는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를 냈다. 이보다 더 소통할 수 없다는 성과를 거뒀다”고 총평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새정부의 대북 관계는 출범 직전 북한의 3차 핵실험에 이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박 대통령은 ‘북한의 변화’라는 원칙 아래 일관성을 지켰다.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이던 남북은 결국 지난 8월 133일만에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박 대통령의 '원칙과 소통'은 남북관계에서도 힘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 대선개입·대화록 논란…야권·종교계 “불통·불신” 사퇴 요구

국내로 눈을 돌리면 박근혜정부 10개월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소통과 원칙’은 야권 등에게 ‘불통과 불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청와대 측이 설명하는 ‘부드러운 원칙’은 설 자리가 없는 형국이다.

청와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18일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사라지고 불통과 독선의 정치가 전부인 것처럼 되고 말았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대선 이후) 지난 1년은 정권안보에 올인하느라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민심불복의 1년이었다”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대통령 사퇴 촉구하는 기독교인들(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민주당 장하나, 양승조 의원의 ‘대선불복’, ‘선친 전철’ 발언과 함께 천주교 정의사제구현단과 개신교 등 종교계 일각에서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고 대학가에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나붙고 있다.

‘소통과 원칙’이 ‘불통과 불신’으로 변모하는 괴리감은 박근혜정부 출범 때부터 조짐이 감지됐다.

야당의 반대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박근혜정부는 전 정부와의 ‘동거 정부’, ‘반쪽 정부’로 출범해야 했고 정부조직법은 출범 26일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격한 어조로 야당에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김용준 총리 후보자 등 각료 후보자의 낙마 등 인사실패의 탓을 야당으로 돌리고 있다고 맞섰다. 이는 이후 1년간 지속되고 있는 청와대·여당과 야당의 지난한 싸움의 전주곡이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충격파를 넘기자 국가기관 대선개입과 NLL 대화록을 둘러싼 여야간 혈투가 본격화됐다.

대선개입과 대화록은 더블이미지로 올 여름을 달구기 시작했다. 지난 6월 검찰이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불구속 기소하자 야당의 공세가 시작됐다. 이에 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으로 역공을 펼쳤다.

이 와중에 국정원의 대화록 전격 공개라는 폭탄이 떨어졌고 불씨는 ‘사초 폐기’로까지 옮겨붙게 된다. 이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사건과 종북 논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논란에 따른 사퇴,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의 경질까지 정국은 혼돈 속에서 숨가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소통보다는 원칙을 우선했다.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지도 않았지만 의혹이 있다면 철저히 조사를 하겠고,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면 그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원칙 아래 장외투쟁을 동원한 야당의 특검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았고 국정원 개혁 요구에 대해서는 강력한 개혁을 약속하면서도 국정원 ‘셀프 개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이 야당과의 소통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9월 여야 대표와의 3자 회동과 11월 구괴 시정연설 등 대통령 당선 이후 네 차례나 국회를 찾았다. 하지만 원칙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으로 오히려 정국은 더욱 꼬이는 양상을 보였다.

이렇다 보니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됐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정몽준, 이재오 등 중진의원들은 공개석상에서 청와대와 여권 지도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 공약 후퇴 논란…원칙에 상처

대선공약 후퇴 논란에서는 원칙마저 상처를 입었다. 재원 마련의 어려움에 따른 기초연금 공약과 4대중증질환, 경제민주화 등 공약 후퇴로 ‘약속과 원칙의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금이 갔다.

특히, 기초연금과 관련해서는 측근인 진영 초대 복지부 장관의 사퇴 사태가 불거졌고 박 대통령은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 이후 두 번째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내치가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 믿었던 외교와 대북 문제마저 불안한 모습이다.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추진에 대한 미국의 지지,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 북한의 장성택 처형 이후 도발 가능성 등 암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회 국정원 개혁특위 역시 여야간 이견이 표출되면서 난항을 겪으면서 대선개입 논쟁이 새해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 만을 바라본다는 원칙 아래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 원전비리 척결에 이어 공기업 개혁에도 착수한다”면서 “이런 세력들의 저항에 굽히지 않는 것을 불통이라고 한다면 앞으로도 불통 소리를 듣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개월 된 정부가 성과를 얘기하는 것은 섣부르지만 분명한 국정철학과 국정운영 기조를 보여왔고 이런 뿌리들이 성과를 낸다면 당당하게 성과를 말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60%를 돌파하며 고공행진 했던 국민들의 박 대통령 지지율은 50%대로 내려앉았다.

야권까지 포용할 수 있는 어머니 정치에 대한 갈증 때문은 아닌지, 야권을 향한 ‘소통과 원칙’의 방법론을 곰곰이 되짚어봐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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