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는 '민영화' 논란, "광우병 악몽 재현되나"

靑-與, 철도·의료 민영화 논쟁 차단 부심

국정원 댓글사건에도 꿈쩍 않던 청와대·정부와 새누리당이 서민 생활에 밀접한 '철도'와 '의료' 부분에서 민영화 논란이 야기되자 초반부터 논란 차단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민영화 논란이 이명박정부의 '광우병' 광풍 사태로 번져 정권의 커다란 오점이 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내부 기류가 발현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與 "민영화 아니다" vs 野 "민영화 위한 우회적 꼼수"

21일 박근혜정부가 추진 중인 철도·의료 등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은 모두 '민영화' 논란에 휘말렸다.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철도 민영화'로 가는 수순이라며 13일째 파업을 하고 있다. 정부와 코레일 사측은 수서발 KTX 운영회사를 코레일 자회사로 설립해 코레일과 자회사가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어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민영화 논란을 의식해 지분구조는 코레일이 41%, 연기금 등 공공자금을 59%로 정해 공기업으로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이것이 사실상 민영화의 '단초'라고 의심하고 있다. 코레일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기금들을 마련할 수 있는 여력이 안되는데다 국민연금이 투자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민간기업이 투자에 나설 것이고, 이는 곧 민영화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 정책도 민영화 논란에 또다른 불을 당겼다.

정부는 의료법인의 영리 자법인 설립 허용은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일 뿐 영리병원 도입이 아니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 등 대학병원(학교법인)처럼, 자법인을 통해 장례식장·주차장 등의 사업을 해 지방 중소병원의 수익을 증대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이 정책이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을 영리법인으로 전환시키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 의료법인이 수익을 고유목적사업인 의료업에 재투자해야하는데, 영리 자법인을 세우게 되면 배당 등을 통해 수익을 외부로 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민영화 논란은 서서히 정치권으로 옮겨 붙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은 민영화와는 무관한 경쟁체제 도입으로 경영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선진화 정책이라며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반면, 민주당과 정의당, 안철수 무소속 의원까지 야권은 한 목소리로 KTX 법인 설립과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 정책을 민영화의 '단초'라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의료법인의 자회사를 통한 수익사업의 허용은 의료기관들이 환자진료보다는 이윤창출을 위한 수익사업에만 집중해 영리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그만큼 환자 부담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면서 "때문에 박근혜정부가 대형병원과 부자들의 돈벌이를 위해 서민들 호주머니를 털려고 한다, 국민들을 상대로 전면적인 의료 영리화 추진을 선전포고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사 출신인 안철수 의원도 같은날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가 추진 중인 원격의료와 의료 영리화 시도는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의료법인의 영리화 시도는 정부가 국민이 아닌 대형 의료법인의 편에 선 것"이라며 비판했다.

◈ 당정청, 민영화 불씨가 광우병 광풍될까 우려

민영화 논란이 철도에 이어 의료까지 확산되자 정부와 여당이 총동원 돼 사태 진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16일에는 청와대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이, 17일에는 주무부처인 복지부의 이영찬 차관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은 민영화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도 19일 기자들을 만나 "타 부처가 영리병원 도입을 얘기한다면 복지부 장관으로서 절대로 막고 반대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에게도 부탁의 손짓을 보냈다.

박 대통령은 19일 대선 1주념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의료법 개정안이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의료법인의 자회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로 다음 날인 20일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황당한 괴담이 퍼지고 있다며 민영화는 오해라고 강조했다. 특히, 처음으로 광우병 사태까지 언급하며 의료 민영화 논란에 우려를 표했다.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정치개입 사건은 지난 2008년처럼 촛불 시위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새누리당의 과거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철도와 의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라는 먹거리 문제처럼 서민들의 생활에 굉장히 밀접한 주제라는 점에서 당정청의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 원내대표가 먼저 광우병 괴담 등을 꺼낸 것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철도 민영화 논란으로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시점에 정부가 왜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허용 발표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논란 확산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괴담까지 나도는데 이를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새누리당의 또 다른 의원은 "철도와 의료 문제는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때와는 다르다. 시민들에게 와 닿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라며 "광우병 파동을 기억하는 우리 당으로선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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