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14…거위의 꿈과 일베의 꿈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최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찢고, 작성자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일베 회원이 경찰에 입건됐다. 주말에는 일베 회원으로 보이는 기업체 직원이 점포에서 팔 젖병 꼭지를 빨기도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젖병 꼭지 제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일베를 상징하는 동그라미 모양의 손가락 싸인을 넣었고 적발해보니 생산업체의 협력사 직원이었다. 일베회원들은 영화 '변호인'에 대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평점을 깎기 위한 별점테러도 벌였다.

지상파 방송사의 이름을 빌어 피해자들을 우롱하는 사건도 있었다. 일베 회원 중 한 사람이 지상파 방송 작가를 사칭해 일베 사이트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찾는다며 글을 올린 뒤 여기에 답한 피해자의 답글을 사진으로 찍어 일베 사이트에 올리며 조롱한 사건이다.

다른 방송사에서도 악성림프종으로 사망한 외국 화가 사진을 올리면서 일베에서 작성돼 나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합성된 사진을 내보내 망신을 당했다. 일베 사이트에는 '해냈다 해냈다 일베가 해냈다', '이 맛에 일베한다'는 등의 글이 올랐다.


그 전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코알라 사진에 합성한 사진을 뉴스 시간에 내보냈다 곤욕을 치른 방송사가 있었다.

물론 일베 회원들이 이런 사안들마다 두둔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젖병 꼭지 사건을 일으킨 회원에게 "왜 개인의 우발행동에 전체가 욕먹어야 하나"는 내부 비난이 빗발치기도 했다. 그러나 게시물이 올라가려면 여러 회원들이 추천을 해야 하는 구조이므로 개인의 돌발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 일베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일간베스트저장소' 홈페이지 캡처)
일베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우선 일베의 내적 구조를 들여다보자. 하나의 축은 조롱과 폄하인데 이는 일베가 디시인사이드에서 파생된 인터넷 유머사이트였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축은 극우적 성격이다. 지역 비하와 차별, 여성 혐오, 개혁적 문민 대통령에 대한 조롱, 인종차별 등이다. 이건 무엇 때문일까? 젊은 우파들의 집합이기 때문일까?

일부에서는 일베가 진보좌파에 대해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실제로는 촛불에서 반동에 의해 갈라져 나온 것으로도 본다. 촛불에서의 실패, 진보좌파에 대한 실망 때문에 '더 이상 당신들에게 속지 않겠어'라는 결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니 일베에는 젊은이들의 현실 속 좌절과 굴절이 담겨 있고, 그것이 남을 혐오하고 비하하며 통쾌해 하는 행동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인정받고, 사회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파격으로 분출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토대에서 일베 회원들은 자기비하를 토대로 타인의 폄하와 조롱에 익숙해지고 있다. "나도 못났지만 너도 별 수 없거든"이 일베의 정신이고 남들이 보기엔 한심해 보이겠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누구든 혐오하고 욕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것으로 족하다고 여긴다. ('일베의 사상', 박기분 저 등 참조)

일베는 일본의 '재특회'와 일부 유사한 점이 있다. '재특회'는 재일외국인의 특권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일본 우파 시민 모임이다. 우리 재일동포들이 특혜를 받고 있으니 이를 철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핵무장까지 주장하는 극우적 성향을 띤다. 거리 시위도 가끔 하지만 주로 인터넷에서 생존해 나가고 있다. 딱히 정리할만한 사상이 없고, 사회운동이기 보다는 타인을 괴롭히고 욕함으로써 불구의 욕망을 해소하려 하는 집단이다.

◈ 일베가 달라졌어요?

일베에 올라온 젖병 인증글과 일베가 훼손한 대자보. ('일간베스트저장소' 캡처)
일베도 뭔가 사회에 대해 생각하는 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정리해 드러내려면 기존의 사상과 이념에 기초한 뒤 그 반동에 의해 토대를 쌓아야 하는데 그것은 싫고 능력에도 부치는 듯하다. 나름대로 생각과 꿈은 있지만 자신들이 감당하긴 어렵고 남들이 하는 걸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즐겨왔으니 주체적이기 보다는 피동적인 일탈이고 계속 그러는 것은 실제로는 낙오일 뿐이다. 그 대신 이런 허약함에 대한 반동으로 쿠데타 인물들을 우상화한다. 박정희 전두환 전직 대통령들을 존경하는 일베의 심리적 구조는 그런 것인 듯하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엿보인다. 다음,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 몰려가 영화 '변호인'의 평점을 깎고, 대자보를 찢고, 유아용품에 대해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기업에 피해를 입혔다. 어차피 구심점이나 목표가 뚜렷한 집단이 아니니 돌발행동이 나타나겠지만 뭔가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일베는 최근 거칠지만 뭔가 있어보이던 신비주의도 사라졌고, 국정원을 두둔하다 역풍을 맞아 집단의 위상이 급추락했다. 국정원 사건이 일베에게 타격인 것은 일베가 추구해 온 '사실에 입각한 ~'이라는 가치가 스스로에 의해 상처를 입은 것이다. 진보좌파 진영이 근거도 없이 사실과 다른 비판과 비관론을 펼친다고 비난하는 것이 일베의 주된 행동이었음을 볼 때 내부 동요가 컸을 것이다. 더구나 일베와 친하게 지낼법한 우익인사들도 등을 돌려 떠났다.

나름 원칙처럼 지켜오던 '온라인 안에서 놀기'가 균열을 일으키고, '사실에 충실한다'는 가치도 무너지고 돌출행동에 의해 사회와의 충돌이 생겨나고 있다. 이럴 경우 전통과 토대가 약한 임의적 집단인 일베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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