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노정(勞政) 갈등…“장관님들, 철도에 대해 알긴 합니까?”

정부·코레일 노사 모두 책임 회피…"진지한 대화 한번 없었다"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철도민영화 저지! 총파업투쟁 승리! 총력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만 여명의 조합원들은 20일로 예고된 수서발 KTX 법인의 면허권 발부 중단과 철도 민영화 계획 백지화 등을 촉구했다. (송은석기자)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기자 오찬간담회에서 "(정부가) 민영화 안한다는 데 자꾸 (노조가) 억지부리면 정부로서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4일 공공기관 정상화 워크숍에서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경쟁으로 자신의 추한 모습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정부합동 기자회견에서 “(철도노조가) 민영화라고 주장하면서 파업을 강행하고 있어 명백한 불법파업”이라고 말했다.

총리와 장관들이 하나 같이 이번 철도파업에 대해 ‘억지’, ‘추한 모습’, ‘불법’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의 한 노조원은 “우리나라 장관님들이 과연 철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철도파업이 노사(勞社) 갈등에서 노정(勞政) 대결로 확대되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부족해 볼썽사나운 진흙탕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


◈ 장관님들, 우리도 9년 전에는 공무원 이었습니다

2005년 1월 출범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2004년까지만 해도 엄연히 정부기관인 ‘철도청’ 이었다.

2002년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철도 민영화 방안이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자 노무현 정부가 민영화 대신 '철도청 공사화'로 궤도를 수정해 철도공사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철도청 공무원들은 코레일에 남아 공기업 직원이 됐고, 일부는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로 자리를 옮겨 공직자 신분을 이어갔다.

현재 국토부 철도국 소속 직원 상당수가 이때 철도청에서 넘어 온 공무원들이다.

이렇다 보니, 9년이 지난 지금도 국토부 철도 담당 공무원과 코레일 직원들은 정식 회의나 개인 모임 등에서 형님, 동생하며 친분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 한 가족, 두 지붕...‘자리 따라 사람도 변했다’

하지만 이처럼 한 가족, 두 지붕 살림을 살게 된 철도청 공무원들의 지난 9년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코레일은 중간급 이상 간부들은 공무원 출신이지만 젊은 직원들은 공기업 공채 출신으로 사고방식에 차이가 많은데다, 여기에 정치권에서 줄을 타고 내려온 낙하산 인사까지 혼재하면서 이른바 ‘국적 불문의 짬뽕 조직’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철도 기관사와 승무원, 역무원 등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강성 노조로 돌변해 하루가 멀다하고 임금 인상과 민영화 금지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여 왔다.

이러는 사이 코레일은 전체 매출액 가운데 인건비가 48%에 달하고 연간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내는 기형조직이 돼 버렸다.

현오석 부총리가 말한 것처럼 고비용 저효율의 모습이 분명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은 공기업 직원이 된 옛 철도청 동료들이 연봉은 많이 받으면서 일은 하지 않고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며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더구나 국토부 산하 기관인 코레일이 수직적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사사건건 정부 정책에
반발하면서 깊은 앙금이 남게 됐다.

이번 철도파업의 빌미가 됐던 수서발 KTX 운영 자회사 설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 공무원들은 철도 경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미 오래전부터 주장했지만, 최연혜 사장을 포함한 코레일 임직원들은 파업 직전까지만 해도 반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철도청 출신인 국토교통부의 한 공무원은 “같은 철도청 출신이지만 국토부 공무원들은 계속해 철도공사의 구조조정과 개혁을 요구했지만, 코레일 간부들은 그때마다 이러저런 이유를 대면서 반대를 했다“며 ”결국 이번과 같은 철도파업 사태를 가져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 장관님들, “노조 탓만 하지 마시고, 공무원들도 질책 하십시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코레일만의 문제일까? 코레일 간부들과 형님, 동생하며 친분 관계를 유지해 온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은 책임이 없을까?

철도청 출신의 코레일 한 간부는 “정부가 철도정책을 수립하면서 언제 코레일과 속 깊은 대화와 협의를 한 적이 있느냐”며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코레일의 또 다른 간부는 “국토부 직원들이 말끝마다 코레일 적자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데 과연 근본적인 적자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 간부는 “강원도와 충북, 경북지역에는 하루 승객이 10명도 되지 않는 철도역이 수두룩하다”며 “정부가 이들 적자 역에 대해 그동안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철도노조 최은철 대변인은 “국토부가 철도 파업에 대해 국민 여론전을 펼치면서 모든 잘못을 코레일 노사에 전가하고 있다“며 ”코레일 부채의 가장 큰 원인은 경부고속철도의 공사비가 당초 예상보다 2배 이상 소요됐기 때문으로, 결국 정부 책임이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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