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뜨면 세일, 세일발 안 먹혀

[Cover 파트1] 화장품 업체의 '마구잡이 세일'

'미샤' '더페이스샵' 등 중저가 화장품 업체들의 세일 일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3일에 한번꼴로 세일을 하는 업체도 있다. 말 그대로 '눈만 뜨면' 세일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세일발'이 통할리 없고, 수익성이 나빠질 공산이 크다. 중저가 화장품 업체들의 '마구잡이' 세일 백태를 취재했다.

"11월 29일부터 30일까지 미샤에서 블랙프라이데이 기념 세일을 진행해 다급하게 물건을 구매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12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윈터 빅 세일을 진행한다'는 문자가 와서 황당했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 거주하는 김영현(가명)씨가 털어놓은 황당한 세일담談이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화장품 업체 미샤가 올 12월 22일까지 세일을 진행한 기간은 총 67일이다. 1년으로 계산해도 6일에 한번꼴로 세일을 했다는 얘기다.

미샤는 '블랙프라이데이 기념세일' '윈터 빅 세일'에 앞선 10월 31일엔 할로윈데이 기념 세일, 11월 9일부터 12일까지는 700호점 기념 세일을 잇달아 진행했다. 12월 16일부터 12월 22일까지 일주일 동안 'TOP 100 50%'라는 타이틀의 할인행사도 진행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더페이스샵 역시 마찬가지다. 올 11월까지 무려 111일 동안 할인행사를 진행했다. 약 3일에 한번 꼴로 세일을 했다는 것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68일, 에뛰드도 56일 동안 세일을 했다.


한 소비자는 "매번 이유를 달리해 세일을 진행하니까 정가가 얼마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며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세일을 해도 손님이 북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일을 수시로 진행하기 때문에 '세일효과'가 반감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12월 명동에 있는 대부분의 화장품 숍은 대대적으로 세일을 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윈터 빅세일' 중이던 미샤의 명동점포 중 절반 이상은 한가했다. 네이처리퍼블릭 역시 최대 50%까지 할인해 주는 행사 중이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았다.

화장품 업체가 수시로 세일을 하는 이유는 경기침체 장기화와 관련이 깊다. 김상현 영남대(경영학) 교수는 "고가 화장품 브랜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화장품 업체들이 브랜드 이미지보다는 기능이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한다"며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가 주요 고객층인 중저가 화장품 업체들이 경기침체 때 세일공세를 강화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도한 출혈경쟁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일기간을 지나치게 늘리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일례로 미샤 에이블씨엔씨의 올 3분기 매출(연결재무제표 기준) 1084억원으로, 전년동기비 12.3% 줄어들었다. 중국과 일본매출이 같은 기간 각각 38%, 10%(엔화 기준) 성장하지 않았다면 더 큰 타격을 입었을지 모른다.

박나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샤뿐만 아니라 대부분 원브랜드 숍의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줄었다"며 "미샤는 세일과 동시에 광고나 마케팅에 비용을 과도하게 늘린 탓에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명희 한국미래소비자포럼 대표(동국대 명예교수)는 "품질이 이전보다 개선되면서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커지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시장점유율이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세일 등 과다출혈경쟁을 하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주목할 점은 중저가 화장품 업체들이 더 이상 과도한 세일을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박나영 연구원은 "공정위가 원브랜드 화장품 숍의 세일을 비롯한 불공정 관행을 조사 중"이라며 "공정위가 이들 업체를 제제하면 할인과 프로모션의 과도한 경쟁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글ㆍ사진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