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총선 실시 문제를 놓고 '강대강' 대립으로 일관, 결국 반쪽 선거가 됐기 때문이다.
지아 총재는 BNP를 비롯한 18개 야당으로 구성된 연합체를 이끌며 작년 10월부터 총선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하시나 총리 정부가 물러나고 중립적 인사들로 과도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하시나 총리는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며 끝까지 거부했다.
방글라데시 정치권의 '두 여걸'인 하시나 총리와 지아 총재는 암살된 지도자를 대변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981년부터 세속주의 성향인 아와미연맹 총재직을 맡아온 하시나 총리는 국부 겸 초대 대통령을 지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다섯 자녀중 맏이다. 라흐만은 1975년 군부세력에 의해 암살됐다.
지아 총재는 1981년 군부세력에 암살된 7대 대통령 지아우르 라흐만의 아내다. 남편이 1970년대 말 창당한 이슬람 성향의 방글라데시국민당을 이끌고 있다. 지아는 1982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8년간 군부 독재자 후사인 무함마드 에르샤드가 물러날 때까지 당을 이끌며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올해 68세로 하시나보다 2살 더 많은 지아는 하시나와 총리직을 주거니받거니 했다.
총리에 먼저 오른 이는 지아. 그는 민주화운동 끝에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해 1991년 임기 5년의 총리직에 처음 올랐다. 1971년 탄생한 방글라데시의 첫 여성 총리였다. 이슬람권에서는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에 이어 두번째 여성 총리로 이름을 올렸다.
지아는 이후 하시나에게 바통을 넘겼고, 하시나는 2001년 바통을 지아에게 반납했다.
지아는 2006년 총리직을 마감하면서 차기 총선을 위해 과도정부를 구성했으나 과도정부가 정당들간 이견들을 교통정리하지 못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 군부 개입을 불러왔다.
군부의 지원을 받은 과도정부는 2006년부터 2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 기간에 하시나는 부패, 살인 등의 혐의로 체포됐고 지아도 부패혐의로 기소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이어 2008년 실시된 총선에서 두 사람이 맞붙었으나 아와미연맹의 압승으로 하시나는 두번째로 총리에 올랐다. 반면 지아는 제1야당 총재로 만족해야 했다.
정부 측은 이번에 야권 불참속에 총선을 치렀지만 총선 후 여야간 합의만 이뤄진다면 언제든 재선거를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하시나 총리와 지아 총재가 '화해'할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