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팽창하는中, 견제하는美, 도발하는日...한국의 딜레마
②동북아 샌드위치 한국...만만한 北에는 으름장
③'한반도' 외교 공간 넓혀 '전략적 완충지' 확보하자
북핵 등 북한 문제는 최근 심화하는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에 명분으로 작용하다 못해 악용되고 있다. 일본이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군사재무장의 길로 나아가고, 여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국의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긴장이 높아지는 식이다. 일본의 등 뒤에 미국이 버티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북한 문제는 미중 경쟁의 좋은 빌미기도 하다.
미국vs중국, 또는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vs중국 간 갈등 양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북한 문제 해결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 외교 현안마다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는 한국이 중견국으로서 역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도 여기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이 그렇게 싸우고 경쟁하면서도 '한반도 안정'이라는 부분에서는 이익을 공유한다.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한국보다 오히려 미중이 확전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이 그 방증이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미사령관이 곧바로 청와대를 찾았고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이 다음 날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한반도가 동북아 화약고인 동시에 미중의 전략적 완충지라면, 북한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은 미중 대결을 막는 중견국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인 셈이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8일 "한국이 미중 두 강대국 중에 어느 쪽에 서야 유리한가 식의 고민은 현실에 맞지 않다"며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커진 만큼 이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전략 자원을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있느냐 여부다. 지금까지 한국은 북한 문제에서 미국과 '꼭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때 통미봉남(通美封南,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는 전략)을 외치던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얘기했음에도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며 단칼에 자르는 게 지금 정부의 태도다. 8일 오전 워싱턴에서 전해진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도 '한미 공조강화' 이상의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기가 어렵다.
박근혜 정부 들어 '북한에 대한 한국 입장=미국 입장'이라는 도식이 강화되다보니,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 해 11월 방미길에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언급한 것조차 화제가 됐다. 한국의 외교 공간이 생길 것이란 기대와 해석이 분분했지만 외교부는 곧바로 원칙론적 발언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고 그 기조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장성택 처형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물론 한국 여론 역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부가 북한 문제를 국내 정치 상황에서만 해석하지 말고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방공식별구역 논란에서 한국이 주변국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관련국들이 전면 대결을 꺼렸기 때문"이라며 동북아 경쟁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