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국시간으로 8일 새벽 미국 워싱턴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직후 공동회견을 통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역내 화해와 협력추세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어진 회견에서 케리 국무장관은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회담 직후 윤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만 봐도 북한 문제 등 대부분 현안에 대해 '우리는' 이라며 한미가 공통된 의견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 문제에 대해서만 윤 장관은 '특히, 본인은(In particular, I pointed)'이라며 화자를 한국에 한정시켰다.
미국 입장에선 동북아 전략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에 대놓고 각을 세우기가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 자체가 일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신사참배는 짜증나는 상황이지 미일 관계를 변화시키는 종류의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 고위 당직자는 "양자 문제를 논의하는 회담에서 3국에 대한 얘기는 안하는 게 관행"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앞서 미국이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신사참배에 대한 실망 표현을 한 것 역시 그동안의 관행을 벗어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외교가에서는 '침묵 자체도 외교적 메시지'라고 본다. 외교관들이 상대의 행간을 읽는데 중요한 정보 중 하나가 바로 이 '의도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사항'이다. 특히나 일본 대목은 윤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비중을 두고 밝힌 내용인 만큼 미측의 침묵은 각별한 행간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다만 미국이 다음주로 예정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NSC 국가안보국장 내정자의 워싱턴 방문시 압박의 메시지를 던질 수는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이 역시 그동안 미국이 '한중을 자극하지 말라'며 일본에 보냈던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비공개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