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들에 대한 엄격한 법 적용과 함께 잇달아 법정구속 결정을 내렸던 법원도 기류도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5000억의 분식회계 등을 통한 1500억원대의 조세포탈, 900억원대의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에 대한 수사다.
조 회장은 적지 않은 범죄 혐의 금액에도 불구속 기소되면서 CJ그룹 이재현 회장과의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이 회장의 경우 조세포탈 액수는 546억원, 횡령.배임 규모는 1500억원대였다.
검찰은 조 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가 기각된 뒤 불구속기소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조 회장에 대한 영장청구를 놓고 검찰 내에선 일찌감치 신중론이 강하게 제기 됐었다. 당시 검찰 고위 간부는 "재벌 총수들을 다 잡아들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다"며 "경제적인 요인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지검은 부장검사들을 상대로 영장청구에 대해 집단토의를 벌였고, 그 결과를 토대로 영장 청구를 결정했었다.
검찰의 기류 변화는 최근 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박 대통령은 "경제회복 불씨가 조금 살아나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갖고 국민과 힘을 합쳐 우선 민생 안정시키고 경제가 궤도에 오르게 해야 할 시점이다"(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것"(9일외국계 기업 오찬 간담회)이라며 경제 살리기를 최고의 국정 목표로 제시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경제 불씨 살리기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한 만큼, 검찰도 이런 국정방향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올해는 대기업 수사보다는 공기업 수사, 그리고 '비정상화의 정상화'에 초점을 맟추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다 김진태 검찰 총장도 각종 비리를 전방위적으로 캐내는 기존의 대대적인 기업 수사방식에 반대하고 있어 대기업 수사는 위축될 공산이 크다.
김 총장은 대검 간부회의에서 수차례 특수수사는 '외과수술식'으로 해당 범죄만 도려내는 정밀한 수사가 돼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곧 단행될 부장검사급 인사에서도 대기업 수사를 주로 하는 서울지검 특수부에는 기존 특수통 검사들다는 기획 검사들이 상당부분 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특수수사를 실무적으로 지휘할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특수통이 아닌 기획통이 내정됐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특수통들이 천덕꾸러기가 됐다"며 "이번 인사에서 뒷방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소문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대기업보다는 정부에서개혁하려는 공기업에 대한 수사를 주로 벌일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법원도 정권의 정책 기조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있다는 분석이다. 법원은 조석래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 회장,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 등을 법정구속한 것과는 사뭇 다른 판단이다.
최 회장 등에 대한 법정구속이 잇따를 때는 경제 민주화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었다.
조 회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당시 재판부는 "주요 범죄혐의에 관한 소명정도와 피의자의 연령, 병력 등을 감안하면 구속의 필요성이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구 회장도 여든에 가까운 고령이어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 상무는 84살인데다가 척추골절 수술에 따른 후유증, 심장 질환 등을 재판부에 호소했지만 법정구속 결정에 고려되지 않았다.
법원은 구 회장 등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경영공백이나 경제발전 기여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재화 변호사는 "일반 양형기준에 봤을 때 배임.횡령 금액이 100억이상이면 당연히 구속기소인데 이런 부분이 정치적 변수가 작용하면서 상당히 누그러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