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갈까 말까 나갈까 말까 스텝 밟는 의료민영화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의료민영화를 두고 의사협회의 파업이 예고되는가 하면 정부의 강경대응이 선포되었다. 의료민영화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 명확한 개념규정은 없다.

다만 공공의 성격이 강한 의료분야에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줄이고 대신 시장에 그것을 맡기는 것을 가리킨다. 이를 위해 의료 시장에서 벌어지는 투자와 영리추구를 법과 제도로 보장해나가는 것까지 포함해 의료민영화라 부른다. 결국 의료민영화에는 의료상업화, 의료사유화, 의료시장화 등의 여러 과정이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병원을 경영하는 법인은 영리법인이 아닌 비영리병원법인이다. 이 비영리법인이 세운 병원도 수익을 올리려 애를 쓰지만 비영리법인의 병원이니 환자진료로 번 돈은 병원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의료업을 위해 다시 투자되어야 한다. 환자 진료에 돈을 앞세우지 않도록 보호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지금의 병원들은 비영리법인의 틀 속에 있는 영리병원인 셈이다. 그리고 지금의 비영리병원법인들은 병원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겨 차익을 남길 수 없다. 비영리법인으로서 국가가 혜택을 주며 사회의 공적인 자산으로 키워 온 것이기 때문에 거래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대형병원은 쉽게 대박을 터뜨릴 사업은 아니다. 고액연봉의 의료진을 갖추고 첨단 의료기기와 설비도 갖추고 여러 가지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만 수익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새로운 영리병원이 생긴다면 수익을 올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갖가지 비즈니스 전략을 세워 수지를 맞추려 할 것이다. 마치 대형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동네 골목상권까지 점거하듯 중소 병원.의원들의 영역을 대형병원들이 집어 삼키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1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의료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 나갈까 말까 나갈까 말까 스텝 밟는 의료민영화

정부가 의료민영화로 가려 할 때 낮은 단계부터 순서를 잡아보자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우선 비영리법인 병원의 영리자회사를 허용해 문을 연다. 다음은 비영리법원 병원에게 약국을 하도록 허가하고, 다음은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허용한다. 그리고 자본들이 병원을 사고 팔 수 있도록 인수합병을 허용함으로써 병원업계의 상업화를 마무리한다.

그 다음은 병원의 상업화에 맞추어 국민의료체계를 민영화하는 단계가 기다린다. 국민건강의료보험과 민영의료보험이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 수도 있고 병원들이 국민건강보험 환자를 받고 싶지 않으면 건강보험의 틀 속에서 탈퇴해 나가버릴 수도 있게 된다. 그리되면 지금 실시하는 요양기관당연지정제는 폐지된다. 끝까지 가자면 건강보험 체제를 민영의료보험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 민영화의 마무리이다.

물론 지금까지 공을 들여 꽤 잘 만들어 놓은 건강보험 체제를 허물면서까지 민영화 진도를 나갈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비영리법인인 병원이 영리법인인 자회사를 세울 길이 열리니 지금까지 구축해 온 공공의료의 한 쪽이 허물어지는 것이고 이후 정부가 어떤 명분으로든 다음 단계를 진행할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회사 설립 과정에서 외부의 자본이 흘러들어 갈 것이고 투자자 위주로 수익을 올려야 하니 의료 상업화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대한의사협회관에서 열린 '2014년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 총파업 출정식'에서 병원 영리화를 추진하는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그러나 정부는 영리법인에 의한 대형병원은 결코 허락할 생각이 없다고 단언한다. 비영리법인이 환자 진료 아닌 부대사업 분야에서만 자회사를 세워 영리를 추구하고 거기서 더 이상 나가지 않을 것이니 믿어달라고 한다.

누군가가 한 쪽 발은 안에 한 쪽 발은 밖에 걸친 채로 서 있으면 나가려는 걸까 들어오려는 걸까? 알쏭달쏭하지만 안에 머무르다 닫혀 있던 문을 열었으니 안 나갈 거면 왜 열었겠냐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나가지 않을테니 걱정 마라고 한다. 믿게 하려면 문을 다시 닫으면 된다. 그런데 나가려고 연 게 아니고 방 안 공기가 건조하고 답답하니 환기만 시키겠다고 한다. 그럴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인구 고령화와 고령인구의 병원 이용 증가로 의료시장은 규모가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의료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의료기술 수준이 경쟁력을 갖추면서 의료관광도 늘고 연수생도 들어오고 의료시스템의 수출 길도 열려 의료는 산업적 가치를 더해간다. 재정이 바닥 난 상황에서 민간 자본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들이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자는 명분이다.

정부의 약속과 다짐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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