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개발자가 됐지만 외환위기(I MF)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회사를 나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개발자가 아니라 '기획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학 후배들과 함께 '마인즈'라는 벤처기업을 세웠다. 이름도 생소한 벤처기업은 한글 프로그램으로 크게 성공한 한글과컴퓨터의 파트너가 됐다. 마인즈는 한컴타자교실ㆍ한컴홈셀 등을 개발했다.
문제는 영업이었다. 마케팅과 홍보 부족으로 제품이 팔리지 않았고, 회사 재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는 아이디어가 풍부한 기획자였지만, 영업은 서투른 CEO였던 것이었다. 사업은 3년 되던 해에 고비를 맞았다. 회사를 떠나면서 '사업을 하려면 영업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심기일전心機一轉. 그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솔루션, 네트워크, 콘텐트 공유서비스, 엔터테인먼트를 표방하거나 융합한 각각의 5개 회사를 차렸다. 당시 벤처기업 붐이 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서비스들은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대신 중요한 걸 얻었다. 자신에게 시장을 내다보는 안목이 탁월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1999년 론칭한 콘텐트공유서비스 '신밧드'는 2000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음악서비스 소리바다와 유사했고, 2000년 선보인 '셀프TV'는 현재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을 주도하는 유튜브와 흡사한 동영상 서비스였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 뿐 그의 눈은 정확했던 거다.
"나는 한가지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미래를 내다보고 방향을 잡는 게 탁월했다. 이런 능력을 활용하면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 교수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최근 그의 행보다. 개발자 오프라인 모임 플랫폼전문가그룹의 대표위원인 황 교수는 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벤처기업 11개를 투자했고, 그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프렌즈를 전략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오랜 시간 내공을 쌓은 그의 말은 청년 CEO의 심금을 울린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누구도 창업하지 않는다." 환경에 지배당하지 말고 이겨내라는 얘기다. 7년에 걸쳐 극복한 이의 말이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